특히 근대계몽기 전(傳)은 어떤 모습이었는가. 한 마디로 이 시기 전(傳)은 을사늑약이 없었다면, 초라하게 삶을 마감해야 할 형편이었다. 그렇다면 이미 '지나가고 있었던' 것으로서의 전(傳)이 매우 헌걸차게 다시 '호명되고' 있었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말할 것도 없이 그것은 '근대 담론'과 '계몽 담론'을 회임할 수 있는 전(傳)의 능력 때문이었다. 실제로도 이 시기 전(傳)은 '근대 담론'과 '계몽 담론'이란 두 아이를 '수태하고', 혹은 '수태하려 하고' 있었다. 이 시기 전(傳)은 소설보다 더 직접적으로 전대의 유가 이데올로기를 '추인'하고 있었고, 동시에 소설보다 더 노골적으로 전대의 이데올로기를 '촉범'하고 있었다. 근대계몽기 전(傳)은, 이렇게 '추인'과 '촉범'의 두 부면을 함께 가지고 있는 '국민' 형성의 '배양 기계'였던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