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십 수에 발을 디디던 어느 날
끌고 다니던 절망 하나를 버려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것은 內臟의 각 부위를 고르게 칼질하는 일이었고
켜켜이 쌓인 세월과 감정의 퇴적을 도려내는 일이었다.
하지만 스스로를 도려낼수록 세상이 먼저 야위어 갔다.
그러던 어느 날 세속의 한 스승이 말했다.
시나 예술의 경지도 결국은 不一不二의 숲에 이르는 것이라고.
순간, 이 길을 다 걸어내지 못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번 세상에서도 나를 만나지 못할 것 같다.
우리가 다시 산으로 돌아가 살 수는 없지만 지리산은 우리의 품성을 되찾는 스승으로서 존재해야 하고 그렇게 노력해야 한다. 그래서 그리움이다. 잃어버린 우리의 마음, 우리의 품성을 회복하기 위한 그리움이다. 산에 두고 내려온 우리 본연의 품성에 대한 그리움이고, 그런 사람에 대한 그리움이고, 아름다운 생명에 대한 그리움이다. 내면으로부터 올라오는 까닭모를 슬픔 또한 이 그리움에 다름 아닐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이 그리움의 마음, 그 자비의 품성을 일상 속에서 회복해야 한다. 그래서 산을 이야기해야 한다. 급한 물살을 타고 내닫는 문명의 위기를 바로 보기 위하여 산을 노래해야 하고 산은 우리가 지향해야 할 삶 속에 하나의 상징으로 서 있어야 한다. 지리산은 이러한 새로운 우리의 삶의 가치를 내장한 소중한 산이다. 이 책에서 우리는 지리산을 통해 이러한 삶의 가치를 발견하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