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에 들린 가방을 빼앗겼다. 도둑이었다. 나는 그 자의 뒤를 쫓아갔다. 도둑의 뒷덜미를 움켜잡으려는 찰나 화들짝 눈을 떴다. 꿈이었다. 이번에 묶을 글들을 퇴고하다 말고 잠이 들었던 모양이다. 내리 며칠 동안 비슷한 내용의 꿈이 이어졌다. 꿈속의 내가 실제의 나인지, 실제인 내가 꿈속의 나인지 헷갈릴 정도였다. 깨고 나면 왠지 억울했다. 꿈속이든 실제이든 분명한 건 모든 것이 같다는 것이다.
수필 쓰기로 등단 한 지 올해로 31년째다. 환상인 듯 실제인 듯 흘러간, 짧지 않은 노정이었다. 시간의 흔적은 보이는데 육안으로 보이는 성과가 없다. 왠지 억울하고 허망하다. 바로 이 기분이꿈로투된게분명하다. 내로라할만한 작품 하나 생산 하지 못한 자책감 탓인 성싶다.
그렇다고 손익계산을 따져보면 손해 본 것 같지는 않다. 아니 얻은 것이 더 클지도 모르겠다. 채움보다 중요한 게 비움이고, 수필은 “누구나 쓸 수 있지”만 “아무나 쓸 수 없는”장르이며 그것이 인생과 동일성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감사한 일이다.
각종 문예지 발표한 원고들을 한 권으로 묶는다. 이 행위 또한 비움의 역설이고 활자의 홍수시대 민폐인지 모른다. 그러나 나름 좋은 수필 쓰기 이론과 실제를 위해 매진한 흔적을 남기고픈 욕심을 부려본다. 오래전에 상재한 수필 칼럼집, 수필 연구서, 수필집에 이어 15년 만에 내는 책이다. 형식을 달리한 수필 범주 내의 내용으로 일관성을 유지했다.
꿈은 걱정과 우려에 기인한 것이라고 한다. 지갑 도둑이 시간이라면 도둑을 쫓는 심리는 지난날에 대한 아쉬움일 터. 부족한 이 글들이 한여름 밤의 꿈처럼, 순간의 신기루처럼 사라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책 발간에 마음을 써 주신 미네르바 출판사에 감사드린다.
2023년 11월
윤지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