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업실을 출퇴근하며 매일 지나는 길이 있었습니다. 한쪽은 넓은 차도, 다른 한쪽은 풀숲 언덕이라 구경할 거라곤 아무것도 없는 재미없는 길입니다. 늘 바쁘게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빠른 걸음으로 걷다 보면 어느덧 작업실, 집이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천천히 길을 걸었습니다. 하늘도 보고, 바람도 느끼고, 그림자도 보고, 바닥에 깨지거나 규칙 없이 제멋대로 끼워놓은 듯한 보도블록도 보면서. 한참을 보니 재미있는 형상들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하나하나 발견하는 게 재미있어서 동네 슈퍼 갈 때도, 화방 갈 때도, 한강공원 갈 때도 한동안 바닥만 보고 다녔습니다. 늘 다니는 길인데 왜 이제야 발견했는지…. 길 위에 사슴도 있고, 생쥐도, 여우도, 악어도, 외계인도, 그리고 큰 배도 있습니다. 나만 아는 길 위의 친구들이 생겼습니다. 만날 때마다 반가워 그 길을 걸어 다니는 것이 더 즐거워졌습니다. 늦은 밤 지친 퇴근길에도 어느덧 사슴이 보이면 ‘집에 다 왔구나’ 하고 안도하며 들어가게 됩니다. 다른 이들도 조금 여유를 가지고 길을 걸으며 주변을 둘러보았으면 좋겠습니다. 지금까지 못 보고 지나쳤던 다른 세상이 보일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