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대 초, SF적인 위기를 동시대에 경험하며 과학소설을 쓴다는 행위의 가치와 내 소설가로서의 역량에 대해 무척 고민했다. 그 고민이 너무 깊어져 슬럼프로 이어지기 전에 다행히 코로나19 대유행의 종식이 선언되었고, 나는 이전보다 조금 더 불확실하고 디스토피아적인 세계에서 여전히 SF를 쓰고 있다. 어떤 위기나 재난도 완전히 해결되지 않고, 세계는 결코 그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고, 어떤 상실은 돌이킬 수 없지만, 우리는 결국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간다. 천천히, 망설이고 의심하며, 그러나 확실하게 한 걸음씩. 이 믿음을 말하고 싶었다.
우리 모두가 항상 정체성 문제를 목숨 걸어가며 고민하는 것은 아니다. 그럴 필요도 없다. 성장은 때로 완만하게 천천히 일어나고, 변화나 성장에 수반하는 고통의 정도는 사람마다 다르다. 나는 『이름이 무슨 상관이람』의 멋진 면이 바로 이 지점에 있다고 생각한다. 이 책에 나오는 열 명의 인물들은, 십대의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만큼만 고민해도 괜찮고, 지금 당장 답이 나오지 않으면 잠시 외면해도 되고, 굉장히 심각해야 할 것 같은 문제라고 꼭 비장하고 우울해야만 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보여준다. …… 꼭 지금 당장 깊이 있고 진지하고 성숙한 사람이 아니라도 괜찮다. 눈앞에서 일어나는 사건을 스스로 통제할 수 있다고 오해하지 말고, 그런 부담을 느끼지 말고, 때로는 주위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할 수 있는 만큼만 감당하면서. 때로는 조지처럼 펑펑 울고, 나디아처럼 낯선 아이 앞에서 솔직해지고, 넬슨처럼 악담을 하고, 그레첸처럼 어머니를 피하고, 퀸시처럼 냅다 달리면서. 그 과정에서 혹시 가능하다면 내가 누구인지, 그리고 내 주위의 사람들은 누구인지 천천히 발견해가면서, 그렇게 자라도 괜찮지 않을까. 조바심내지 않아도 어차피 우리는 어른이 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