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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집을 묶는 동안 어머니가 돌아가셨다.
고향에서 사과 농사를 짓던 서른셋 형이 사고로 세상을 떴을 때
어머니는 매일 저녁 아들이 지냈던 방에 불을 밝혀놓았다.
2년 넘게 단 하루도 거르지 않았다.
아버지가 병에 걸려 몸져누웠을 때
어머니는 매끼 새 밥을 지어 올렸다.
채 몇숟가락 뜨지 못해 밥이 그대로 남아 있어도
어머니는 병든 남편을 위해 하루도 거르지 않고
삼시 세끼 새 밥을 지어 올렸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나중에 죄가 되고 한(恨)이 된다고 했다.
나도 시를 이렇게 써야 한다
2019년 7월 |
| 내 발등 위에
한살 난 딸애의 발을 올려놓고
걸음마를 시킨다
앞으로 걷게 하기 위해
한 발 한 발 뒤로 걸음을 옮긴다
뒷걸음질을 친다
앞으로
내게 남은 일은 오직
뒷걸음질뿐이다
2012년 늦가을 영일대에서 |
| 구례 운조루에 들렀다. 구름 속, 새처럼 숨어 사는 집. 구경 삼아 곳간채에 들르니 통나무 속을 파내 만든 낡은 뒤주가 보인다. 아래쪽 구멍 마개에 '타인능해(他人能解)'라는 글귀가 있어 뜻을 구한다. "다른 사람도 이 마개를 풀 수 있다."
연기가 오르지 않게 굴뚝을 낮췄다는 이 집의 속 깊은 옛 주인을 생각한다. 배고픈 백성들이 아무 때나 와서 쌀을 퍼가고 가을에 추수를 하면 다시 되돌려놓았던 마음의 뒤주. 주인은 이 녘까지 쌀을 나누고 어느 농부의 갓 말린 볍씨를 소복이 품에 채우고 있다.
내내 나만 풀 수 있었던 뒤주, 밑바닥을 들킬까 봐 나 혼자 풀려고 했던 뒤주통을 천천히 끌고 오는 길, 내 몸 가만히 '他人能解'를 새긴다. 용기를 내어 낡은 뒤주 같은 첫 시집을 냈다. 무섭고, 떨린다. |
| 이건 연습이에요.
연습일 뿐이에요.
2024년 9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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