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로 흐느꼈고
수시로 시큰거렸으며
더러는 킬킬대며 써내려가다 보니
어느새 쉰 편이다
말이 과했다
편편이 고해성사에 다름 아니던 것
한데 묶어 놓으니 고해소告解所다
난데없이 불쑥 쏟아낸 내밀한 고백에
끝까지 귀 기울여준 그대
잡은 손 놓지 않은 그대
토닥토닥 등 두드려 위로해준 그대가 있어
가능했던 일이다
나에게로 와 문장이 되어준 모든 인연에게
무릎걸음으로 다가가 입맞춤하는 새벽이다
사랑한다
사랑한다
2011년 봄, 제주 조천 ‘시인의 집’에서
섬에 들었다. 붕괴 직전에 이른 폐가에 몸을 의탁한지 4년, 침구로 배어들어 등짝까지 축축해지는 지독한 습기와 고질적 두통의 원인인 곰팡이와 천장 위 고양이와의 동거도 같은 햇수다. 이 밖의 무수한 복병에도 불구하고 섬을 뜨지 못했던 건 인간들로부터 버려지고 내쳐진 오두막의 처연한 눈빛 때문이다. 아무리 그렇다 해도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란 고작해야 사철 꽃 지는 일 없게 마당을 가꾼다거나, 가만가만 말 걸어주고 칭찬해주는 따위가 전부였을 뿐, 허나 진심이 읽혀졌던 걸까? 그는 눈 먼 보리 숭어의 비상과 화염이라고밖에 달리 표현할 길 없는 장엄한 놀을 앞마당에 펼쳐주었다. 분에 넘치는 포상이다.
사는 일이 매양 이러하다. 어눌하고 촌스럽고 거절에 서툴러 궂은일을 자초하기도 한다. 오지랖이 넓어 아프고 고달프고 사무치고 아련하다. 시가 나를 향해 제 발로 찾아와준 건 어쩌면 이런 못난 구석이 눈에 밟혀서 일게다. 혼자 놔둘 없게 위태로워 손 내밀어 준 것일 게다. 한 일에 비하면 황홀한 포상이다.
시에게 진 빛이 많다.
어림없겠지만 이 시집으로 그 빛이 일부나마 변제됐으면 좋겠다.
삼백칠십여 개의 크고 작은 오름과
생태계의 허파인 곶자왈과
잦은 강풍과
검은 돌로 에워싸인 집과 밭과 무덤
그리고 삼천육백여 명의 해녀와
만 팔천여 신(神)과
소멸 위기에 처한 매혹적인 방언과
정명(正名)되지 않아 슬픈 무자년 광풍의
제주에 산다
어느 날의 돌연한 입도(入島)가
그새 십일 년째다
출생으로 주어진 고향을 제외하면
가장 오랜 정주이니
자의로 획득한 고향이랄 수 있겠다
여기서 나는
사철 피고 지는 꽃과 철새와 갯것과
세상 멋진 길고양이 랭보와
다감한 삽화로
글에 생기를 불어넣어준 딸아이 율과
섬살이 중이다
아니 꿈을 노래하고 있다
담담하고 덤덤히 부르는 이 노래를
혼자 먹는 밥 챙겨준 시절 인연과
태풍 때마다 섬집의 침수를 염려하는
육지의 벗 그리고
꿈을 꿈꾸는 고단한 이들과
내 시의 무한 권력인 독자들께 바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