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갖게 된 ‘부산’이라는 지명이 들어간 책
그동안 필자는 부산문화재단으로부터 여러 번 지원을 받아 평론집과 시집을 엮었다. 그래서 언젠가는 부산 현대문학 혹은 시문학을 언급한 글들로 책을 한 권 내고 싶었다. 2022년 『한국현대문학과 지역문학』으로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 우수출판콘텐츠로 선정될 때에도 부산에 관련된 원고들은 아껴 두었다. 마침 2022년과 2023년 부산의 현역 시인들의 작품을 읽고 그들 가운데 문제작을 평할 기회도 여러 번 생겼다.
2023년 부산문화재단에 제출한 원고가 심사위원들의 선정기준에 부합되어 지원을 받게 되었다. 드디어 필자의 소원인 부산에 관련된 글만으로 『부산 현대문학의 어제와 오늘』이라는 제목을 정하면서 <부산>이라는 지명이 들어간 책을 엮게 된 것이다. 1969년 대구에서 대학원 석사과정을 졸업하고 아무 연고도 없는 부산에 정착한 지 올해로 54년이 된다. 고향 남해군 창선도는 중학교를 졸업하고 진주고등학교를 진학하던 1959년 떠나 방학 때에만 머무는 공간이 되었다. 1963년부터 1969년까지는 대구에서 대학과 대학원 시절 6년을 보냈다. 그러나 이때까지 주소지는 고향이었으니 남해 사람으로 36년 살았고 54년을 부산 사람으로 살고 있다. 그리고 두 아들들에게는 그들의 고향이기도 하다. 말하자면 부산은 필자의 제2의 고향이요, 필자가 가장 사랑하는 곳이기도 하다. 그동안 부산을 책 이름 속에 넣지 못한 숙제를 드디어 해결하게 되어 정말 기쁘다.
제1부는 과거에 부산에 살았거나 머물었던 시인과 수필가 그리고 아동문학가에 관한 글들이다. 그 가운데 <해방기부터 부산시인협회 결성 시까지의 부산 시단>은 1997년 <부산문학사>의 집필위원으로 쓴 글이 토대가 되었다. 그동안 이 글은 다른 곳에 발표된 적도 있고 2006년 필자의 평론집 『한국현대시와 지역문학』에 수록된 적도 있다. 그런데 이번에 다시 부산시인협회로부터 그 시기의 시문학사를 청탁받아 많이 손을 보았다. 그때에는 생존해 있던 시인들 가운데 많은 분들이 이미 고인이 되어 그 부분을 다시 썼다. 그래서 이번 책의 앞부분을 장식하게 되었다. 나머지 글들은 작고한 시인들의 삶과 시 세계에 대한 글들이다. 김춘수 시인의 글과 김춘수 시인과 조향 시인의 관계도 부산에서 벌어진 일들이거나 시작된 글이기에 수록하였다. 제2부는 그동안 관심 깊게 읽었던 부산 현역 시인들의 시집에 관한 글들이다. 그들 가운데는 시작 활동을 오래한 시인도 있고, 비교적 최근에 시작 활동을 시작한 시인들도 있다. 박청륭 시인의 경우 지역 시 전문지의 청탁을 받아 쓴 글이다. 제3부는 필자와 깊은 인연이 있는 세 분의 수필가의 작품집 세계와 최근의 부산의 문예지에 발표한 시인들의 작품에 대한 언급이다. 그리고 필자가 살고 있는 부산 해운대의 최치원 선생 관련 유적들의 관광상품화 내지 축제 콘텐츠로서의 가능성을 제안한 글도 포함 시켰다.
문학의 위상이 날로 위축되고 있다. 심지어 문학에 관련된 특강보다 인문학 특강에 열광하는 풍토이다. 그러나 분명히 문학은 인문학의 가장 선두이고 토대이다. 이 책의 발간을 계기로 필자는 남은 여생을 부산 문학의 위상 회복과 역사 정립에 봉사할 기회를 찾고자 한다.
이 책을 출판할 계기를 마련해 준 부산문화재단 관계자와 매번 필자의 책 출판을 마다하지 않는 작가마을 배재경 대표에게 감사의 뜻을 전한다. - 평론집을 펴내며
부산 시인들과 남강문화권 시인들의 장소 사랑
2014년 필자는 『한국 현대시와 디아스포라』라는 여섯 번째의 연구논저이자 평론집 성격의 책을 낸 바 있다. 그 책은 문학평론집이라 했으나 그 가운데는 2009년 2월 필자가 정년퇴임하기 전에 쓴 연구논문도 몇 편 있었다. 그 책을 내면서 그 동안 주로 시집 해설 형식으로 발표한 부산과 남강문화권 시인들의 작품론을 한 권의 책으로 곧 내겠다는 생각을 밝힌 바 있다. 그러나 여러 가지 사정으로 6년이 지난 지금 그 생각을 실천에 옮기게 되었다. 따라서 이 책은 각주가 달린 연구논문이 철저히 배제된 문학평론이자 시 비평들로만 엮어지는 첫 번째 책이기도 하다. 이렇게 몇 년을 지내다 보니 또 다시 한 권의 책으로는 엮기에는 넘치는 글들이 모이게 되었다. 그동안에 문인단체의 각종 심포지엄 주제발표 형식으로 발표한 글들과 작고 시인들과 부산과 남강문화권을 제외한 각 지역 현역 시인들의 작품론은 다음 기회에 다른 책으로 엮을 수밖에 없게 되었다.
책 제목을 『한국현대시와 토포필리아』라 하게 되었다. 토포필리아topophilia라는 말은 원래 그리스어로 장소 혹은 공간을 의미하는 topos와 사랑을 의미하는 philia의 합성어로 굳이 우리나라 말로 번역하면 장소사랑이라 할 수 있으나 그렇게 간단한 개념으로 파악하기 힘들어 그냥 토포필리아로 사용되고 있다. 국내에는 Yi-Fi Tuan의 『Topophilia』(1974)를 2000년에 부분역하여 소개한 이도 있고, 2011년에는 완역된 책이 나오기도 했다. 그러나 여기서는 이 이론을 본격적으로 수용하지는 못하였다. 다만 1부에서 부산 시인들의 <금정산> 사랑에 대한 작품들을 살펴보았다. 그리고 진주시의 한가운데로 흐르는 <남강>을 사랑한 작고 시인들의 작품에 대하여 언급하였다. 앞으로 더욱 이 이론을 공부한 이후 문인들의 토포필리아에 대한 좋은 글들을 쓰기로 다짐한다.
제2부에서는 지금까지 시집 해설과 서평을 통하여 살핀 부산 현역시인들의 작품세계를 이름 가나다순으로 배열하였다. 비록 오래 전 시집에 대한 글부터 최근의 시집에 대한 글들로 엮어져 있으나 부산 시인들의 특성을 충분히 살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3부에서는 2008년부터 발족한 진주를 학연으로 한 경향각지의 문인들의 단체인 <남강문학학회> 회원들의 시집들에 대한 글들을 역시 가나다순으로 배열하였다. 부산에서 자생한 인터넷 카페 모임에서 출발한 <남강문학회>는 2009년부터 <남강문학>이라는 연간지를 내고 매년 10월 초 개천예술제 기간에 경향각지의 회원들이 진주에 모여 진주 문인들과 더불어 출판기념회를 겸한 행사를 하고 있다. 그리고 이 모임과 행사로 인하여 젊은 날에 문인을 꿈꾸었다가 기회를 놓친 사람들이 많이 기성 문인이 되어 인생의 후반을 문학작품 창작에 열을 올리고 있다. 이러한 단체로는 국내에서는 처음이라 볼 수 있는데, 많은 타 지역 문인들의 부러움을 사고 있다. 이러한 현상도 역시 토포필리아 이론으로 충분히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책 역시 부산문화재단 지원과 배재경 시인 <작가마을 대표>의 노력으로 나오게 되었다. 정말 고마운 일이다. 부디 부산 시인들과 남강문화권 시인들의 왕성하고 격조 높은 작품 활동을 기대하면서 이 책이 그들의 또 다른 자극제가 되기를 기대하는 바이다.
2020년 봄
해운대 바닷가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