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 진의 소설에서는 그의 문학적 스승이라고 할 수 있는 체호프나 고골의 소설에서 만날 수 있는 넉넉한 고전적 품격이 느껴진다. 평범하고 단순한 문장 안에 인간 삶의 복잡다단한 측면들을 리얼하게 제시하는 능력도 출중하려니와, 그의 서사에서 느껴지는 유머, 해학, 풍자, 페이소스도 일품이다. 비평가들은 물론이고 평범한 독자들까지 하 진의 소설에 열광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애도의 관점에서 보면, 문학은 풍요로운 창고다. 놀랄 만큼 많은 문학작품들이 흘러가고 놓치고 잃어버린 대상에 대한 애도를 중심에 놓고 있기 때문이다. 프로이트가 애도를 정의하며 말했던 것처럼 애도의 대상이 사람처럼 구체적일 수도 있고 꿈이나 이상처럼 추상적일 수도 있겠지만, 잃어버린 대상에 대한 그리움 즉 애도가 문학의 가장 중요한 주제 중 하나인 건 분명해 보인다. 내가 이 글을 쓰면서 참조한 많은 외국 문헌들이 문학과 애도의 역학에 주된 관심을 할애하고 있는 것도 이러한 연유에서일 것이다. 문학은 애도의 한 방식일지도 모른다. 이는 언어가 애도와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어쩌면 애도는 언어의 매개 없이는 가능하지 않은 것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애도는 말로 할 수 없던 슬픔을 말로 표현하면서, 즉 언어의 영역으로 끌어오면서 비로소 시작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비록 그 애도의 끝이 어딘지 알 수 없고, 애도의 끝이라는 게 존재하는지도 불확실하지만……. 데리다는 우리가 어떤 대상을 사랑하고 있을 때, 그에 대한 애도도 이미 시작된 것이라고 한다. 그리고 애도는 끝없이 계속되는 것이고, 그래서 애도에 완성이나 종결은 없는 것이며 애도는 실패해야, 그것도 “잘 실패해야” 성공한 것이라고 한다. 데리다의 말처럼, 사랑했던 사람을 잃은 슬픔에는 끝이 없어야 하며 어쩌면 그것이 진정한 애도일지 모른다. 그러니 내가 애도에 관해 쓴 일련의 글은 죽음이나 상실 이후에도 계속되는 이상적인 사랑, 사랑의 이상, 공존과 연속에의 그리움에 관한 글이다. 달리 말하면 애도에 대한 예찬인 셈이다. - 서문
이 소설은 다른 소설과는 판이한 형식을 택함으로써, 전통적인 소설양식에서는 도저히 담아낼 수 없는 윤리적, 미학적, 철학적 차원의 문제들을 점검하고 논의하면서도 소설의 형식에 충실한 성공적인 관념소설이다. 이는 옮긴이 혼자만의 생각이 아니고, 이 소설이 2003년도의 부커상 최종 후보작이었다느 사실에서도 입증된다. 쿳시와 같은 작가가 아니었다면 이러한 소재의 작품이 그러한 평가를 받는 것 자체가 애초에 불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다. (쿳시가 부커상을 이미 2회나 수상한 작가가 아니었다면 이 작품으로 그 상을 수상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 왕은철 (옮긴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