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라딘

헤더배너
상품평점 help

분류

이름:설재인

출생:1989년

최근작
2024년 9월 <우연이 아니었다>

이 저자의 마니아
마니아 이미지
물결
1번째
마니아
마니아 이미지
물고구마
2번째
마니아
마니아 이미지
책읽는나...
2번째
마니아

강한 견해

본문 전에 작가의 말을 먼저 싣는 건 왠지 아주 저명한 외국 소설가의 책에서나 본 광경인 것 같지만 뭐, 법으로 정해진 것은 아니니 멋대로 하련다. ✴ 《강한 견해》는 2021년 발행된 《붉은 마스크》의 속편이다(그러므로 전작을 읽지 않으면 이 소설이 완전히 이해되지는 않는다). 《붉은 마스크》를 써서 아작에 투고하던 당시 나는 언제 저축이 동나고 아사할지 헤아리며 체념의 콧노래를 부르던 백수였고, 지독한 알코올 중독 상태에 놓여 있었다(지금은 백수가 아니지만 중독은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책에 실릴 프로필 사진을 찍으러 갔던 날, 아작의 편집장님이 간과했던 점이 바로 그거였다. 편집장님은 별생각 없이 속편을 쓰지 않겠느냐고 물었고 돈이 절실했던 나는 손을 벌벌 떨며 두 달 만에 속편을 써서 가져갔다. 장담하건대 사진 찍던 그날 편집장님은 《붉은 마스크》가 이렇게까지 안 팔릴 줄 몰랐을 거다. 안 팔렸는데 어떻게 속편을 내. 그런데 놀랍게도 하필 내가 갑자기 자신의 밑에서 출판노동자로 일을 시작하는 바람에(맙소사….) 안 내줄 수도 없게 되었다. 안 낸다고 했다가 삐쳐서 도망가면 어떻게 한단 말인가(나는 퇴사가 취미인 사람이다). 그래서 아작에서는 울며 겨자 먹기로 《붉은 마스크》 출간일 이후 1년을 기다려 속편을 찍게 된다. 전편을 아무도 모르는데 속편은 얼마나 더 모르려나 싶어 회사의 금전적 손해가 좀 걱정되긴 하는데, 어차피 내 월급은 달라지지 않을 거니까 뻔뻔하게 굴려고 한다. 《붉은 마스크》는 코로나 바이러스로 한창 전 세계가 떠들썩하던 시기의 수능시험일을 배경으로 했다. 영어듣기평가 시간 중간에 갑자기 마스크가 피부로 변해 더는 벗을 수 없게 된 ‘변이체’와 변이하지 않은 ‘미변이체’로 사람들이 나뉜다. 변이체들은 코와 입을 잃은 대신 아가미로 호흡하며 서로 일종의 텔레파시를 통해 대화한다. 군에서 변이체들에게 총을 쏴봤는데 죽지도 않는다. 심지어 누구누구는 더한 능력도 가지고 있다. 경악과 혼란의 와중에 누군가는 선한 행동을 하며 또 누군가는 저열하기 짝이 없게 구는데 놀랍게도 대부분은 절망하면서도 열심히 생존한다. 《붉은 마스크》의 에필로그는 사태로부터 6년 후를 조망했다. 그리고 이 책 《강한 견해》는 그 에필로그로부터 다시 10년이 흐른 시점에서 이야기를 시작한다. 그러니, 다시없을 마지막 수능시험일로부터는 16년이 흐른 뒤다. 변이체는 ‘안피류(顔皮類)’로, 미변이체는 ‘비구류(鼻口類)’로 명명된다. ✴ 편집장님은 《붉은 마스크》를 안 읽은 사람도 《강한 견해》를 읽을 수 있도록 프롤로그를 써줬으면 했지만 그걸 내가 어떻게 한단 말인가…. 나는 원래 수능 공부 할 때도 요약을 못 해서 손가락이 부르트도록 깜지를 쓰던 무식한 인간이다. 그래도 꼭 이 책을 읽어야 할 이유를 들자면 아마 《강한 견해》가 설재인의 모든 작품 리스트 중 가장 이질적인 문장과 내용으로 가득하다는 걸 꼽고 싶다. 30년이 지나도 이런 글은 못 쓸 거다. 이유는 자명하다. 이 소설은 설재인이 아니라 술에 푹 젖은 수세미가 썼기 때문이다. ✴ 《붉은 마스크》에 실린 ‘작가의 말’에서 나는 이것이 느린 멸종이 아닐까, 라고 썼다. 《강한 견해》를 쓰며 수세미 씨는 진화와 퇴화, 멸종의 경계를 흐릿하게 만들고자 노력했다. 그 경계는 사실 대단히 인간의 시점과 기준에 따라 제멋대로 정해진 것이 아닐까. 누가 멋대로 종을, 우등과 열등을, 생존과 소멸을 논한단 말인가. 저 위 차원에 있는 존재가 보면 사망조차도 그저 또 다른 형태의 변이일지 모른다. 보통 어둠 속에서 술에 취해 키보드를 두드린 후, 그중의 8할을 지우고 2할을 살리는데 다음 날의 오전 시간을 썼던 수세미 씨가 이야기하고 싶던 건 대충 그런 궤변이다. 그리고 《강한 견해》의 결말은 아주 꽉 닫혀 있음을 미리 고지한다. 2022년 초여름 설재인

그 변기의 역학

나는 지금 LH에서 공급하는 전세형 청년매입 임대주택에 거주하고 있으며 이 사업의 당첨 경쟁률은, 접수번호로 미루어보건대 아마도 몇천 대 일이었다. 서울 안에서는 도저히 불가능한 액수의 보증금만을 내고 살고 있는 것도, 그 전에 반지하를 알아보던 것도, 예비자였던 내게 순번이 돌아왔다는 당첨 전화를 아주 추운 겨울날에 받은 것도 모두 실제 있었던 일이다. 하여 이 소설의 초반부는 ‘아정’이라는 이름을 ‘재인’으로 바꾸어도 아무런 문제가 없을 정도로 자전적이다. 그러니까, 어디까지냐 하면 봉수 파괴가 일어나는 순간까지가 그러하다(아마 이 소설을 읽은 많은 분이 그 부분에서 ‘봉수 파괴’가 실재하는 현상인지 궁금해 인터넷 검색을 해보았을 거라 생각한다. 그렇다. 귀신 들린 화장실마냥 변기의 물이 저절로 내려가는 현상에 실제로 고통받는 이들이 있다!). 마치 평행우주처럼 아정과 재인의 삶이 갈라지는 부분이 거기부터다. 솔직하고 정확하게 고백하자면 아정과 달리 나는 LH하자센터(소설에서 말하는 그대로 관리실의 역할을 하는 곳이다)에 전화조차 하지 못했으니까. 2, 3주 동안 봉수 파괴로 이루 말할 수 없는 스트레스를 받았고 업체나 공사 없이 해결할 방법을 하루 몇 시간씩 검색하다 뜨거워진 핸드폰을 집어 던지며(물론 소중한 핸드폰이 고장 나서는 안 되므로 매트리스에 던졌다) 울기도 했고 내 변기의 문제가 아닌데도 온갖 종류의 뚫어뻥을 사서 들이밀었다. 그럼에도 나는 전화하지 않았다. 이런 말을 하면 사람들은 다들 입을 쩍 벌리고서 “왜?”를 묻는다. 그러게, 나는 왜 못 했을까. 소설에 묘사된 것과 달리 LH의 직원들은 아주 친절하고, 나는 사소한 문제에 대해서는 오히려 하자센터에 쉽게 연락한 바가 있었다. 그런데 왜 봉수 파괴에 대해서는 할 수가 없었을까. 그 이유를 찾는 것에서 아마도 소설은 시작된 듯하다.

붉은 마스크

이것은 혹시 아주 느린 멸종이 아닐까 나를 낙천적인 사람이라 오해하는 지인들이 종종 있지만 나의 여유와 웃음은 극도의 두려움에서 온다. 아주 어렸을 때부터 기대를 버리도록, 가장 최악의 경우만을 상상하도록 훈련받아 왔기 때문이다. 실망하거나 절망하고 싶지 않던 마음에서 시작된 자기방어였다. 항상 실패할 것이라고, 산산조각날 것이라고 예상하며 산다. 팬데믹이 시작되었을 때 나는 생각했다. 이것은 혹시 아주 느린 멸종이 아닐까. 초기에 확진 판정을 받은 사람들이 물어뜯길 때 나는 생각했다. 정말로 멸종의 냄새가 나는데. 사람들이 모두 마스크를 쓰고 손세정제를 사용하는 지금도 나는 생각한다. 이미 멸종한 지구상의 수많은 개체들도, 자기들이 결국엔 멸종할 것을 모르고 나름의 수단을 사용해 스스로를 지키려 노력하지 않았을까. 그래서 나는, 나를 공포에 질리게 만든 바로 이 순간이 더 무서워지는 이야길 쓰자고 결정했다. 다음에 선택해야 할 것은 무대였는데, 그건 퍽 쉬웠다. 수능시험장을 무대로 설정한 이유는, 가볍게 말하자면 “수능날 세상이 멸망하면 수험생들은 진짜 불쌍하지 않냐?”라는 교사 시절의 우스갯소리 때문이었고. 무겁게 털어놓자면, 교사라는 이전의 직업이 내게 남긴 상흔, 그리고 이전의 직업을 꾸역꾸역 수행하던 내가 타인에게 남겼을 상흔이 아직도 치유되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렇게 무대가 설정되자 소설은 어쩐지, 저절로 소통과 교육을 논하는 이야기로 변해버리고 말았다. 이 소설은 결코 기분을 좋게 해주는 이야기가 아니다. 나 또한 나의 인물들에게 이토록 잔인하게 굴었던 적이 없었다. 이토록 의도를 분명히 하고 쓴 이야기가 없었기 때문은 아닐까. 나는 이 소설을 소통이라는 이름의 번듯한 이상 아래 자행되는 비논리와 부조리, 그리고 거기서 파생되는 허무함을 보이기 위해 썼다. 분명 선한 의도와 목적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왜 결과는 자주 그 의도대로 도출되지 못할까. 타성에 젖어 걸었던 길만을 걷고, 지위를 이용해 기계적으로 나쁜 방식의 소통만을 하는 사람들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또한, 서로 다른 세대는 서로를 괴물로 인식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고. 자신이 행한 잘못들을 애써 부정하고 스스로 잊으려 하는 불완전한 사람들이 교육이라는 명목 하에 다시금 어린 누군가를 지독한 불행에 빠뜨리기도 한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세상이 굴러간다.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그 모든 비극을 묻어놓은 채 산다. 각자 엉뚱한 이야기를 하고 숱한 거짓말을 늘어놓는데도 어느 순간 모두 티끌 같은 일이 된다. 이들도 아마 점차 이토록 끔찍한 일들이 있었다는 걸 잊고 익숙해질 테다. 멸종하는 그 순간까지도 모를 것이다.

우연이 아니었다

남들이 손가락질할 거리가 많은, 나 같은 사람끼리 구질구질한 사건들을 겪으면서도 결국은 서로를 끊지 못하고 함께 생활하는 이야기를 쓰고 싶었다.

정성다함 생기부수정단

시대의 변화는 가파르고 변화무쌍하다. 그래서 과거에 굳어진 결과를 현대의 율동하는 잣대로 심판하는 게 폭력적이라 느껴질 때도 가끔 있다. 게다가 변하지 않을 것 같던 과거의 모습도 시간이라는 강물에 깎이고 다듬어지기 마련이다. 다함과 다정의 모험을 통해 나는 아마도 이런 얘기를 하고 싶었던 것 같다.

가나다별 l l l l l l l l l l l l l l 기타
국내문학상수상자
국내어린이문학상수상자
해외문학상수상자
해외어린이문학상수상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