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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국내저자 > 소설
국내저자 > 에세이

이름:김훈

성별:남성

국적:아시아 > 대한민국

출생:1948년, 대한민국 서울 (황소자리)

직업:소설가

가족:아버지는 항일독립운동과 신문기자 및 소설가로 활동했던 김광주이다.

기타:휘문고등학교를 거쳐 고려대학교 정치외교학과에 입학했다가, 영문학에 심취 영문과로 전과했으나, 경제적, 가정환경 등의 이유로 4학년때 중퇴하였다.

최근작
2024년 6월 <허송세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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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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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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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강산무진

교정원고를 겨우 읽었다. 내 팔목을 움직여서 쓴 글이었다. 서둘러 이사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벗들아, 이제 헤어져야 할 시간이다. 늙은 江의 下流에서 나는 너무 오랫동안 주저앉아 있었다. 그러므로 벗들아, 이제 헤어지자. 나는 江을 거슬러서 上流로 가려 한다. 모든 낱말과 시간이 다시 새롭게 태어나는 그 始原의 물가로.

개발바닥을 들여다보았다. 발바닥에 새카만 굳은살이 박혀 있었다. 그 굳은살 속에는 개들이 제 몸의무게를 이끌고 이 세상을 싸돌아다닌 만큼의 고통과 기쁨과 꿈이 축적되어 있었다. 그 굳은살은 땅을 딛고 달릴 만큼 단단했고 충격을 버틸 만큼 폭신했다. ...인기척 없는 산골의 공가촌이나 수몰지의 폐허에서 개들은 짖고 또 짖었다. 나는 개발바닥의 굳은살을 들여다보며서 어쩌면 개 짖는 소리를 알아들을 수도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세상의 개들을 대신해서 짖기로 했다. 짖고 또 짖어서, 세상은 여전히 고통 속에서 눈부시다는 것을 입증하고 싶었다. 쉬운 일은 아니었다. 쉽지가 않으므로, 온 마을의 개들이 따라서 짖을 때까지, 인간이 인간의 아름다움을 알게 될 때까지 나는 짖고 또 짖을 것이다.

공무도하

나는 나와 이 세계 사이에 얽힌 모든 관계를 혐오한다. 나는 그 관계의 윤리성과 필연성을 불신한다. 나는 맑게 소외된 자리로 가서, 거기서 새로 태어나든지 망하든지 해야 한다. 시급한 당면문제다. 나는 왜 이러한가. 이번 일을 하면서 심한 자기혐오에 시달렸다. 쓰기를 마치고 뒤돌아보니, 처음의 그 자리다. 남은 시간들 흩어지는데, 나여, 또 어디로 가자는 것이냐.

공차는 아이들

공은 만인의 것이면서 어느 누구의 것도 아니다. 공은 어느 누구의 것도 아니기 때문에 만인의 것이다. 그 공이 인간과 인간 사이를 매개한다. 공을 쫓아서 달려가는 인간을 바라보면서 나는 둥글다는 것의 아름다움을 알게 되었다. 축구가 놀이로써 가능한 것은 공이 둥글기 때문이다. 공이 둥글지 않고 정육면체나 삼각뿔이었다면 축구는 성립되지 않거나 재미없는 놀이가 되었을 것이다. 둥근 것은 거기에 가해지는 힘을 정직하게 수용하고 땅에 부딪치고 비벼지는 저항을 순결하게 드러내서 빼앗기고 뺏는 동작들 사이의 적대관계를 해소시킨다. ... 도시의 황폐한 공터나 뒷골목, 남루하고 억눌린 삶의 오지에서 사람들은 공을 차고 있었다. 공은 억압할 수 없는 생명의 충동으로 높이 솟아올랐다. 공을 차면서, 축구경기를 보면서 나는 인간의 아름다움을 믿는다.

김훈.박래부의 문학기행 둘

헛것들을 걷어내고 삶의 맨살을 찾아낸다는 것은 지난한 일이었고 거기에 자신의 맨발을 들이댄다는 것은 더욱 어려웠으며, 맨발이 맨살을 밟는 직감의 내용과 의미를 언어로 전한다는 것은 때때로 거의 불가능했는데, 나하고 박래부는 그 불가능한 길을 향해 앉은뱅이 무릎걸음으로 겨우겨우 걸어 나갔다... 기나긴 날들의 그 순결하고 뜨겁던 열정과 모색의 힘이 이제 다시 살아나 앞날의 빛으로 피어나기를 간절히 바란다.

김훈.박래부의 문학기행 하나

헛것들을 걷어내고 삶의 맨살을 찾아낸다는 것은 지난한 일이었고 거기에 자신의 맨발을 들이댄다는 것은 더욱 어려웠으며, 맨발이 맨살을 밟는 직감의 내용과 의미를 언어로 전한다는 것은 때때로 거의 불가능했는데, 나하고 박래부는 그 불가능한 길을 향해 앉은뱅이 무릎걸음으로 겨우겨우 걸어 나갔다... 기나긴 날들의 그 순결하고 뜨겁던 열정과 모색의 힘이 이제 다시 살아나 앞날의 빛으로 피어나기를 간절히 바란다.

남한산성

옛터가 먼 병자년의 겨울을 흔들어 깨워, 나는 세계악에 짓밟히는 내 약소한 조국의 운명 앞에 무참해졌다. 그 갇힌 성안에서는 삶과 죽음, 절망과 희망이 한 덩어리로 엉켜 있었고, 치욕과 자존은 다르지 않았다. 말로써 정의를 다툴 수 없고, 글로써 세상을 읽을 수 없으며, 살아 있는 동안의 몸으로써 돌이킬 수 없는 시간들을 다 받아내지 못할진대, 땅 위로 뻗은 길을 걸어갈 수밖에 없으리. 신생의 길은 죽음 속으로 뻗어 있었다. 임금은 서문으로 나와서 삼전도에서 투항했다. 길은 땅 위로 뻗어 있으므로 나는 삼전도로 가는 임금의 발걸음을 연민하지 않는다. 밖으로 싸우기보다 안에서 싸우기가 더욱 모질어서 글 읽는 자들은 갇힌 성안에서 싸우고 또 싸웠고, 말들이 창궐해서 주린 성에 넘쳤다. 나는 아무 편도 아니다. 나는 다만 고통받는 자들의 편이다. 성 아래로 강물이 흘러와 성은 세계에 닿아 있었고, 모든 봄은 새로웠다. 슬픔이 나를 옥죄는 동안, 서둘러 작은 이야기를 지어서 내 조국의 성에 바친다. ― 2007년.

남한산성

나는 세계악에 짓밟히는 내 약소한 조국의 운명 앞에 무참하였다. 그 갇힌 성 안에서는 삶과 죽음, 절망과 희망이 한 덩어리로 엉켜 있었고, 치욕과 자존은 다르지 않았다. 신생의 길은 죽음 속으로 뻗어 있었다. 임금은 서문으로 나와서 삼전도에서 투항했다. 길은 땅 위로 뻗어 있으므로 나는 삼전도로 가는 임금의 발걸음을 연민하지 않는다. 밖으로 싸우기보다 안에서 싸우기가 더욱 모질어서 글 읽는 자들은 갇힌 성 안에서 싸우고 또 싸웠고, 말들이 창궐해서 주린 성에 넘쳤다. 나는 아무 편도 아니다. 나는 다만 고통 받는 자들의 편이다. 성 아래로 강물이 흘러와 성은 세계에 닿아 있었고, 모든 봄들은 새로웠다. 슬픔이 나를 옥죄는 동안, 서둘러 작은 이야기를 지어서 내 조국의 성에 바친다.

내가 읽은 책과 세상

나는 내가 쓴 글들을 다시 들여다본 적이 거의없다. 나는 그 수치와 모멸을 견디지 못한다. 원고를 출판사에 넘길 때, 버려야 할 내 신체의 일부를 잘라주듯이 던져버렸다. 교정은 물론, 책이 나와도 다시는 읽어보지 않았다. 나를 오래오래 괴롭힌 글일수록 더욱 거들떠보지 않았다. 그리고는 다시 책상 앞으로 돌아와 연필을 잡았다. 자기혐오로써 자신을 긴장시켜나가는 자의 불우는 말로 전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 책을 엮는 과정에서, 편집자의 강권에 못 이겨 오래 전에 쓴 글들을 다시 읽었다. 글을 바꾸어 쓰면서 나는 참담하였다. 결국 이렇게 나이 먹고 세월은 별 수 없이 허송세월되는 것인가. 20년 전에 원고를 내던졌듯이 이 원고들도 또 한번 팽개치듯이 내던질 수밖에 없다. 무슨 수가 있겠는가. 나에게는 없다. 다시, 출발선상으로 돌아가려 한다. 그것만이 지나간 글들을 펴내는 나의 진정성이다. 그 이외에는 아무것도 없다.

너는 어느 쪽이냐고 묻는 말들에 대하여

세상을 향하여 말할 때, 나는 늘 나 자신의 어지러운 생명에 입각해 있었다. 그래서 내 말은 만신창이가 되어 허덕지덕하였다. 나는 내 말이 눈물이나 고름처럼 내 몸에서 흘러나오는 액즙이기를 바랐다. 그 분비물로 보편적 진실을 말하려는 허영심이 나에게는 없다. 나는 그 진물이 내 몸의 일부이기만을 바랐다. 세상은 읽혀지거나 설명되는 곳이 아니고, 다만 살아낼 수밖에 없을 터이다. 나는 미리 설정한 사유의 틀 속으로 세상을 편입시킬 수는 없었다. 나는 내 글의 계통 없음을 조금도 부끄럽게 여기지 않는다. 나는 여러 사람들이 흘린 액즙과 고름이 서로 섞이고 스미는 세상을 꿈꾸었다. 그것은 어찌 그리 어려운 일이었던지, 몸이 가장 부대끼는 날에, 가장 곤고한 글을 나는 썼다.

'너는 어느 쪽이냐'고 묻는 말들에 대하여

세상을 향하여 말할 때, 나는 늘 나 자신의 어지러운 생명에 입각해 있었다. 그래서 내 말은 만신창이가 되어 허덕지덕하였다. 나는 내 말이 눈물이나 고름처럼 내 몸에서 흘러나오는 액즙이기를 바랐다. 그 분비물로 보편적 진실을 말하려는 허영심이 나에게는 없다. 나는 그 진물이 내 몸의 일부이기만을 바랐다. 세상은 읽혀지거나 설명되는 곳이 아니고, 다만 살아낼 수밖에 없을 터이다. 나는 미리 설정한 사유의 틀 속으로 세상을 편입시킬 수는 없었다. 나는 내 글의 계통 없음을 조금도 부끄럽게 여기지 않는다. 나는 여러 사람들이 흘린 액즙과 고름이 서로 섞이고 스미는 세상을 꿈꾸었다. 그것은 어찌 그리 어려운 일이었던지, 몸이 가장 부대끼는 날에, 가장 곤고한 글을 나는 썼다.

언니의 폐경 姐姐的绝经期 Menopaŭzo de la Fratino

생로병사의 무늬 삶이란, 생로병사(生老病死)가 분리되지 않고 한 덩어리로 뒤엉킨 복합체로 느껴진다. 삶 안에 이미 죽음이 잠복해 있고 병들어 죽는 일은 삶의 본래 그러한 진행일 것이다. 가을에 메뚜기와 잠자리들은 어디 가서 죽는 것인지, 들판을 뒤져보아도 벌레들의 사체를 찾을 수 없었다. 늙은 새들의 죽음 또한 그러하다. 그것들은 아마도 시간 속에서 소멸하는 듯싶었다. 내가 사는 마을의 노을은 정처 없다. 큰 강이 바다와 만나는 하구를 뒤덮는 노을은 사위어가는 저녁의 시간 속을 흘러서 어두워진다. 시간이 노을을 따라서 어둠의 저편으로 사라지면, 강가에서 놀던 나는 시간의 이쪽 기슭에 주저앉아 있다. 비행기들이 저무는 노을 속으로 떠났고 새들은 숲으로 돌아왔다. 저녁의 강가에서 나는 늘 혼자서 놀았다. 내가 사는 마을의 강은 내륙의 바닥을 기는 파행하천이다. 강은 흐름을 겨우 이어가며 하구에 닿는다. 밀물이면 강은 바다를 가득히 안고 부풀어 오른다. 바다는 보이지 않지만, 보이지 않는 먼 바다의 기별이 이 작은 하천에 와 닿고, 그 기별을 따라 바다의 새들이 물을 거슬러 올라온다. 멀어서 보이지 않는 시간의 미립자들이 바닷물을 따라서 강의 상류 쪽으로 밀려올 때 강은 숨이 차다. 상류로 올라온 물고기들은 썰물이면 바다로 돌아간다. 물고기들은 시간을 따라서 강을 오르내리지만, 물고기의 생명 속을 흐르는 시간에 나는 닿을 수 없었다. 어두워질 때까지 나는 강가에 주저앉아서 바다로 돌아가는 물고기들을 바라보았다. [언니의 폐경]은 그 강가에 살던 시절에, 강과 노을과 바람 속에서 쓰여진 글이다. 나는 생애의 시간 속을 생로병사의 흐름에 실려서 통과해 나가는 여성 생명의 슬픔과 아름다움에 관하여 말하고 싶었다. 소멸의 맨 끝에서 다시 새롭게 태어나는 것들의 먼 기별에 대해서 말하고 싶었다. 여자들의 체취 속에서 묻어나는 삶의 억압과 모순들에 대해서 말하고 싶었다. 그 억압과 모순이 여자들의 생명 속에 자리 잡아가는 무늬에 대하여 말하고 싶었다. 시간이 몰고 오는 풍화(風化)와 생성(生成)이 여자의 생명 속에 남기는 흔적들에 관하여 말하고 싶었다. 나의 언어가 진술이 아니라 흐름이기를, 바람이나 노을처럼 시간에 포개져서 어둠 속으로 소멸하는 흔적 같은 것이 되기를 나는 바랬다. 나는 여자를 말할 때 늘 머뭇거린다. 나는 여자에 대한 사유를 온전히 전개시키지 못한다. 나는 늘 젊은 여자의 생명의 아름다움과 그 질서와 무질서에 관하여 말하고 싶었다. 말들은 좀체로 성립되지 못했다. 나는 늘 반벙어리처럼 더듬거리면서 글을 끝냈다. 아름다운 것들, 살아서 가득 찬 것들은 늘 나에게 절대적 타자(絶對的他者)로 다가온다. 그것들은 나에게 애초부터 결핍되어 있던 것들을 일깨운다. 먼 바다가 내륙의 강물을 압박하듯이, 노을이 저무는 시간 속으로 소멸하듯이 그 결핍들은 아득한 시공을 건너서 나에게 다가온다. 애초부터 결핍되어 있었던 것의 부재(不在)가 어째서 슬픔으로 느껴지는 것인지를 나는 아직도 알지 못한다. 『언니의 폐경』을 쓰면서 나는 여자들의 삶을 구성하는 수많은 자질구레한 것들에 대한 정보를 수집할 수밖에 없었다. 생리대, 화장품, 핸드백, 스웨터, 머리카락, 조리법 같은 것들이다. 나는 여성 잡지나 TV 홈쇼핑 광고를 통해서 그 자질구레한 물건들에 대한 정보를 수집했다. 나는 생리대나 화장품을 선전하는 여성잡지들을 공들여 읽었다. 내 아내는 웃었지만, 나는 웃을 수 없었다. 나는 그 하잖아 보이는 물건들이 여자의 생명 속에 드리우는 무늬와 질감들을 생각하면서 때때로 행복했다. 하찮은 것들 앞에서도 삶은 경건할 수가 있다. 아, 경건이라고 쓰고 나니까 가슴이 메인다. '경건'은 우리가 이미 오래전에 폐기 처분한 단어인 것이다. 단어를 버렸을 뿐 아니라, 경건에 해당하는 모든 행위와 태도를 우리는 이미 내버린 것이 아닌가. 생명 속으로 흘러들어오는 모든 시간은 늘 새롭고, 그 새로운 시간과 더불어 생로병사를 통과하는 것이 삶의 운명이라 하더라도 나는 내 주인공들이 새로운 시간 앞에서 경건하기를 바랬다. 『언니의 폐경』속에 나오는 두 초로의 여자가 삶의 피폐함과 세상의 억압 속에서, 생로병사의 질곡 속에서도 자신의 경건함을 확보한 존재들로 독자들에게 다가가기를 나는 바란다.

연필로 쓰기

알림 나는 여론을 일으키거나 거기에 붙어서 편을 끌어모으려는 목표를 가지고 있지 않다. 나의 글은 다만 글이기를 바랄 뿐, 아무것도 도모하지 않고 당신들의 긍정을 기다리지 않는다. 나는 나의 편견과 편애, 소망과 분노, 슬픔과 기쁨에 당당하려 한다. 나의 이야기가 헐겁고 어수선해도 무방하다. 나는 삶을 구성하는 여러 파편들, 스쳐지나가는 것들, 하찮고 사소한 것들, 날마다 부딪치는 것들에 대하여 말하려 한다. 생활의 질감과 사물의 구체성을 확보하는 일은 언제나 쉽지 않았다. 이 책의 출간으로, 나의 적막이 훼손된다면 그것은 전혀 내가 바라는 바가 아니다. 2019년 봄 일산에서 미세먼지(fine dust)를 마시며 김훈 쓰다

원형의 섬 진도

자동차가 우수영에서 진도대교를 넘어갈 때마다, 나는 늘 애초부터 없었던 나의 고향을 생각했다.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던 것에 대한 기억은 안타깝고도 풍요로운 것이었다. 진도는 늘 내 안타까움에 넉넉히 응답해 주었다.... 이 작은 책은 진도에 대한 내 오랜 사랑의 결실이다. 나이 들어서 발견한, 내 보편적 고향의 아름다움에 관하여 쓸 때 나는 행복했다. 나는 진도의 민속 문화 전체에 대하여 과학적인 글을 쓸 힘이 없다. 다만 그 섬에 대한 나의 사랑을 전할 수만 있다면 이 작은 책을 세상에 내보내는 두려움을 사면받을 수 있을터이다.

자전거 여행

벗들아, 과학과 현실의 이름을 들먹여가며 가엾은 수사학을 조롱하지 말아다오. 나는 마침내 내 자신의 생명만으로 자족할 수 없고, 생명과 더불어 아늑하지 못하다. 그리고 이 부자유만이 나의 과학이고 현실이다. 나는 나의 부자유로써 나의 생명을 증거할 것이다. 살아서 아름다운 것들은 나의 기갈에 물 한 모금 주지 않았다. 그것들은 세계의 불가해한 운명처럼 나를 배반했다. 그러므로 나는 가장 빈곤한 한 줌의 언어로 그 운명에 맞선다. 나는 백전백패할 것이다. 만경강 저녁 갯벌과 거기에 내려앉는 도요새들의 이야기를 쓰던 새벽 여관방에서 나는 한 자루의 연필과 더불어, 말하여질 수 없는 것들의 절벽 앞에서 몸을 떨었다. 어두워지는 갯벌 너머에서 생명은 풍문이거나 환영이었고 나는 그 어두운 갯벌에 교두보를 박을 수 없었다. 나는 아무 것도 만질 수 없었다. 아무 곳에도 닿을 수 없는 내 몸이 갯벌의 이쪽에 주저앉아 있었다. 1999년 가을부터 2000년 여름까지 전국의 산천으로 끌고 다닌 내 자전거의 이름은 풍륜(風輪)이다 .가을의 마지막 빛 속에서 풍륜은 태백산맥을 넘었다. 눈 덮인 소백, 노령, 차령산맥들과 수많은 고개를 넘어서 풍륜은 봄의 남쪽 해안선에 당도하였다. 거기에 원색의 꽃들이 피어 있었다. 이제 풍륜은 늙고 병든 말처럼 다 망가졌다. 이 책을 팔아서 자전거 값 월부를 갚으려 한다. 사람들아 책 좀 사가라. 갈 수 없는 모든 길 앞에서 새 바퀴는 얼마나 아름다운가. 아, 아무것도 만질 수 없다 하더라도 목숨은 기어코 감미로울 것이다, 라고 나는 써야 하는가. 사랑이여, 이 문장은 그대가 써다오.

자전거 여행 2

벗들아, 과학과 현실의 이름을 들먹여가며 가엾은 수사학을 조롱하지 말아다오. 나는 마침내 내 자신의 생명만으로 자족할 수 없고, 생명과 더불어 아늑하지 못하다. 그리고 이 부자유만이 나의 과학이고 현실이다. 나는 나의 부자유로써 나의 생명을 증거할 것이다. 살아서 아름다운 것들은 나의 기갈에 물 한 모금 주지 않았다. 그것들은 세계의 불가해한 운명처럼 나를 배반했다. 그러므로 나는 가장 빈곤한 한 줌의 언어로 그 운명에 맞선다. 나는 백전백패할 것이다. 만경강 저녁 갯벌과 거기에 내려앉는 도요새들의 이야기를 쓰던 새벽 여관방에서 나는 한 자루의 연필과 더불어, 말하여질 수 없는 것들의 절벽 앞에서 몸을 떨었다. 어두워지는 갯벌 너머에서 생명은 풍문이거나 환영이었고 나는 그 어두운 갯벌에 교두보를 박을 수 없었다. 나는 아무 것도 만질 수 없었다. 아무 곳에도 닿을 수 없는 내 몸이 갯벌의 이쪽에 주저앉아 있었다. 1999년 가을부터 2000년 여름까지 전국의 산천으로 끌고 다닌 내 자전거의 이름은 풍륜(風輪)이다 .가을의 마지막 빛 속에서 풍륜은 태백산맥을 넘었다. 눈 덮인 소백, 노령, 차령산맥들과 수많은 고개를 넘어서 풍륜은 봄의 남쪽 해안선에 당도하였다. 거기에 원색의 꽃들이 피어 있었다. 이제 풍륜은 늙고 병든 말처럼 다 망가졌다. 이 책을 팔아서 자전거 값 월부를 갚으려 한다. 사람들아 책 좀 사가라. 갈 수 없는 모든 길 앞에서 새 바퀴는 얼마나 아름다운가. 아, 아무것도 만질 수 없다 하더라도 목숨은 기어코 감미로울 것이다, 라고 나는 써야 하는가. 사랑이여, 이 문장은 그대가 써다오.

자전거여행

벗들아, 과학과 현실의 이름을 들먹여가며 가엾은 수사학을 조롱하지 말아다오. 나는 마침내 내 자신의 생명만으로 자족할 수 없고, 생명과 더불어 아늑하지 못하다. 그리고 이 부자유만이 나의 과학이고 현실이다. 나는 나의 부자유로써 나의 생명을 증거할 것이다. 살아서 아름다운 것들은 나의 기갈에 물 한 모금 주지 않았다. 그것들은 세계의 불가해한 운명처럼 나를 배반했다. 그러므로 나는 가장 빈곤한 한 줌의 언어로 그 운명에 맞선다. 나는 백전백패할 것이다. 만경강 저녁 갯벌과 거기에 내려앉는 도요새들의 이야기를 쓰던 새벽 여관방에서 나는 한 자루의 연필과 더불어, 말하여질 수 없는 것들의 절벽 앞에서 몸을 떨었다. 어두워지는 갯벌 너머에서 생명은 풍문이거나 환영이었고 나는 그 어두운 갯벌에 교두보를 박을 수 없었다. 나는 아무 것도 만질 수 없었다. 아무 곳에도 닿을 수 없는 내 몸이 갯벌의 이쪽에 주저앉아 있었다. 1999년 가을부터 2000년 여름까지 전국의 산천으로 끌고 다닌 내 자전거의 이름은 풍륜(風輪)이다 .가을의 마지막 빛 속에서 풍륜은 태백산맥을 넘었다. 눈 덮인 소백, 노령, 차령산맥들과 수많은 고개를 넘어서 풍륜은 봄의 남쪽 해안선에 당도하였다. 거기에 원색의 꽃들이 피어 있었다. 이제 풍륜은 늙고 병든 말처럼 다 망가졌다. 이 책을 팔아서 자전거 값 월부를 갚으려 한다. 사람들아 책 좀 사가라. 갈 수 없는 모든 길 앞에서 새 바퀴는 얼마나 아름다운가. 아, 아무것도 만질 수 없다 하더라도 목숨은 기어코 감미로울 것이다, 라고 나는 써야 하는가. 사랑이여, 이 문장은 그대가 써다오.

자전거여행 2

자전거 바퀴에 공기를 가득 넣고 다시 길로 나선다. 팽팽한 바퀴는 길을 깊이 밀어낸다. 바퀴가 길을 밀면 길이 바퀴를 밀고, 바퀴를 미는 길의 힘이 허벅지에 감긴다. 몸속의 길과 세상의 길이 이어지면서 자전거는 앞으로 나아간다. 길은 멀거나 가깝지 않았고 다만 뻗어 있었는데, 기진한 몸속의 오지에서 새 힘은 돋았다. 2004년의 여름은 뜨거웠다. 내리쏟는 햇볕 아래서 여름의 산하는 푸르고 강성하였다. 비가 많이 내려서 강들이 가득 찼고 하구는 날마다 밀물에 부풀었다. 내가 사는 마을의 곡릉천은 파주 평야를 파행서진해서 한강 하구에 닿는다. 조강을 거스르는 서해의 밀물이 날마다 이 하천을 깊이 품어서 내륙의 유역으로 바다의 갯벌이 펼쳐진다. 밀물을 따라서 숭어 떼가 올라와 물 위로 솟구치고 자라도 오고, 복어도 온다. 바다의 기별이 물고랑을 따라 들의 안쪽으로 실려와 이 들에서 부는 바람 속에는 벼가 익는 냄새에 갯내음이 스며 있다. 늙은 하천은 선연한 감수성으로 아득히 멀어서 보이지 않는 바다와 교접하고 있다. 살아 있는 것은 이러하구나, 살아서 작동되는 것들은 마침내 저러하구나... 내 이 작은 물고랑을 기어이 사랑해서 온 여름을 물가에 나와 놀았다. 놀다 보니 여름은 다 갔고, 몇 줄의 글이 겨우 남아 여기에 묶는다. 가을에는 그만 놀고 일 좀 해야겠다.

칼의 노래

나는 인간에 대한 모든 연민을 버리기로 했다. 연민을 버려야만 세상은 보일 듯 싶었다. 연민은 쉽게 버려지지 않았다. 그해 겨울에 나는 자주 아팠다. 눈이 녹은 뒤 충남 야산 현충사, 이순신 장군의 사당에 여러 번 갔었다. 거기에, 장군의 큰 칼이 걸려 있었다. 차가운 칼이었다. 혼자서 하루 종일 장군의 칼을 들여다보다가 저물어서 돌아왔다. 사랑은 불가능에 대한 사랑일 뿐이라고, 그 칼은 나에게 말해주었다. 영웅이 아닌 나는 쓸쓸해서 속으로 울었다. 이 가난한 글은 그 칼의 전언에 대한 나의 응답이다. 사랑이여 아득한 적이여, 너의 모든 생명의 함대는 바람 불고 물결 높은 날 내 마지막 바다 노량으로 오라. 오라, 내 거기서 한줄기 일자진(一字陣)으로 적을 맞으리.

칼의 노래

2000년 가을에 나는 다시 초야로 돌아왔다. 나는 정의로운 자들의 세상과 작별하였다. 나는 내 당대의 어떠한 가치도 긍정할 수 없었다. 제군들은 희망의 힘으로 살아 있는가. 그대들과 나누어 가질 희망이나 믿음이 나에게는 없다. 그러므로 그대들과 나는 영원한 남으로서 서로 복되다. 나는 나 자신의 절박한 오류들과 더불어 혼자서 살 것이다. 초야의 저녁들은 헐거웠다. 내 적막은 아주 못 견딜 만하지는 않았다. 그해 겨울은 추웠고 눈이 많이 내렸다. 마을의 길들은 끊어졌고 인기척이 없었다. 얼어붙은 세상의 빙판 위로 똥차들이 마구 달렸다. 나는 무서워서 겨우내 대문 밖을 나가지 못했다. 나는 인간에 대한 모든 연민을 버리기로 했다. 연민을 버려야만 세상은 보일 듯싶었다. 연민은 쉽게 버려지지 않았다. 그해 겨울에 나는 자주 아팠다. 눈이 녹은 뒤 충남 아산 현충사, 이순신 장군의 사당에 여러 번 갔었다. 거기에, 장군의 큰 칼이 걸려 있었다. 차가운 칼이었다. 혼자서 하루 종일 장군의 칼을 들여다보다가 저물어서 돌아왔다. 사랑은 불가능에 대한 사랑일 뿐이라고, 그 칼은 나에게 말해주었다. 영웅이 아닌 나는 쓸쓸해서 속으로 울었다. 이 가난한 글은 그 칼의 전언에 대한 나의 응답이다. 사랑이여 아득한 적이여, 너의 모든 생명의 함대는 바람 불고 물결 높은 날 내 마지막 바다 노량으로 오라. 오라, 내 거기서 한줄기 일자진(一字陣)으로 적을 맞으리. 다시, 만경강에 바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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