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리고 분명한, 불안의 풍경 안에 나무를 붙잡고 우는 한 사람이 있다. 그는 나무 앞에서 영원히 마지막 들숨을 들이마시는 중이다. 최후가 궁금했던 나는 그의 불안을 들여다보곤 했다. 불안에 몸을 기대는 밤에 나는 불안하지 않았다. 그 불안의 풍경이 나에게는 내가 붙들어야 할 안온한 부표처럼 느껴진다. 나의 사랑은 불안이다. 내 눈동자에 짓는 공화국의 율서는 불온한 잠언으로 읽히기를 희망한다. 읽을수록 의지를 상실하는 위험한 외경 한 권이 나의 온몸이 되기를 바란다.
쓰고 싶은 글은 써야 하는 이유가 자꾸만 없어지고, 묻어뒀거나 잊어버린 지 오래인 글은 제집을 잃어버렸던 고아 유령처럼 다시 나를 찾아온다. 꺼내기 어려웠던 책장의 목록과 작성되고 있던 것들의 시작되지 않은 최후. 쓰지 않았으나 쓰일 예정이었던 미래 나의 책장 같은 것. 잠에서 깨면 내가 그은 적 없는 선들이 그어져 있다. 그것은 내가 오래전 그었거나 긋고 있는 선이 맞나. 연필을 잡은 나의 손은 나의 것이 맞나. 태어나지 않았으나 이미 죽어버린, 죽어버렸으나 아직 태어나지 않은, 활자들.
2021년 9월
김유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