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시는 독자와 세상에 보내는 러브레터>
가끔 나는 비난 아닌 비난 앞에 선다. 나태주는 시를 너무 많이 쓰고 시집을 너무 자주 낸다고. 심지어 나태주의 시는 묽은 시라고까지 말하기도 한다. 대개는 동업자들이 하는 말이다. 그렇다. 나는 시를 많이 쓰고 시집을 많이 내는 시인이다. 이번에 내는 시집은 39번째 시집.
하지만 내가 억지로 시를 쓰고 거짓으로 시를 쓰는 것은 아니다. 그냥 써지니까 쓰는 것이고 시가 모였으니까 시집을 내는 것이다. 그것은 자연스러운 일상이고 생명행위이고 연소행위 그 자체이다. 아는 사람은 알 것이다. 시라는 문학형식은 억지로 써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일단은 마음 안에서 울컥! 하고 무엇인가 올라와야 한다. 아무리 시를 많이 쓰는 사람이라고 해도 억지로 그 ‘울컥’을 유도하거나 만들어낼 수는 없는 일이다. 그러므로 시는 내가 쓰는 것이 아니라 시가 나를 시켜 자기를 쓰게 하는 것이다. 시와 시인의 주종관계가 다르다는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시의 한 심부름꾼이고 하수인이고 시의 청부업자일 뿐이다. 철저히 시가 갑이고 내가 을이다. 부디 오해하지 마시라. 내가 시를 쓰는 것이 아니라 시가 나를 쓴다는 것! 독자들도 그렇다. 독자들은 의외로 쓱~ 하고 쓰인 시를 더 좋아한다.
왜 그런가? 자연스러운 시, 편안한 시, 자기네들 마음에 와닿는 시를 원하기 때문이다. 시는 여전히 짧고 단순하고 그 표현이 쉬워야 한다. 그리고 나의 문제뿐만 아니라 너의 문제에 보다 많은 관심과 표현을 주어야 한다. 그래야만 독자와의 소통과 공유가 가능하다.
이번에 나의 시집이 꼭 그렇다는 말은 아니다. 그러려고 노력했다는 말이다. 시인에게 시는 영원한 처녀림 같은 것. 얼마나 내가 그곳에 가까워졌는지 알 도리가 없다. 다만 가능한 일이라면 독자가 얼마나 나의 시를 잡아주고 선택하는가에 있다.
이번에도 다만 벌거벗은 마음으로 독자들에게로 간다. 언제나 말했듯이 나의 시들은 독자들에게 세상에 드리는 러브레터와 같은 것. 독자들의 선택만을 겸허한 마음으로 기다릴 뿐이다. 그래서 시집의 제목도 『그 길에 네가 먼저 있었다』가 되었다.
-2017년 1월 - 나태주 시인이 독자에게
아직은 진행형
날마다 나의 중요한 일과 가운데 하나는 잠을 청하기 전에 컴퓨터를 열고 시집 원고를 다시 살피는 일이다. 어쩌면 이것이 이 세상 마지막 날이지 싶어서 그렇게 한다. 하나의 버릇이고 그것이 또 나의 시 쓰기 습관이다.
그렇게 또다시 한 권의 시집 원고가 모였다. 그런데 이번에는 '천년의시작'에서 시집을 내주겠단다. 시 한 편 한 편이 횡재인데 이것은 더욱 큰 횡재다. 이 시편들이 세상으로 나가 사람들과 어떻게 조우할지는 나도 모르는 일이다.
늘 여기까지가 나의 소임이다. 그리고는 돌아서서 섭섭해하고 감사한 마음을 또한 잊지 않는다. 이런 마음들이 모이고 쌓여 나의 일생이 되었다. 그것이 아직은 진행형. 그래서 다시 고맙다.
2016년 1월
공주 금학동에서
나태주
아프지 않은 사람은 없습니다
어쩌면 자기가 아프다는 것도 모른 채 아픈 사람이 더 많이 아픈 사람인지 모릅니다. 정말로 슬픈 사람은 울지도 못하고 정말로 괴로운 사람은 괴롭다는 소리조차 하지 못한다고 합니다.
여기서 다만 우리의 몫은 서로에게 응원을 보내고 위로를 보내고 축복을 나누는 일입니다. 서로를 위하여 기도를 챙기는 일입니다. 아프지 마세요. 오늘은 아프지만 내일은 좋아질 것입니다. 서로에게 용기를 북돋우는 일입니다.
그러할 때, 진정 그것이 그러할 때, 우리의 아픔은 조금쯤 하향 조정되고 조금쯤 헐거워지고 좋아지는 쪽으로 나아갈 것입니다. 아프지 마세요. 오늘은 아프지만 내일은 부디 아프지 마세요. 우리 다 같이 아프지 맙시다. - 책머리에서
시는 인간의 감정을 가장 아름다운 언어로, 그것도 짧고 간결하게 표현한 문장입니다. 문장 가운데 문장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시는 산문 문장으로는 도저히 대신할 수 없는 특별한 점을 지닌 문장입니다. 말할 것도 없이 시가 우리의 감정을 다스려 주는 글이기 때문입니다.
(중략)
감정적으로 불안정한 청소년들이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시를 읽는 것입니다. 의도 없이 무심코라도 시를 읽다 보면 시의 내용이 마음에 스며들 것이고 들쑥날쑥한 감정이 조금씩 가지런해지는 걸 느낄 것입니다. 그것은 내가 청소년 시절 그랬고 지금까지도 자주 경험하는 일입니다.
청소년들이여. 마음이 어지럽거나 답답하거나 우울하거나 불안하거든 시를 찾아 읽으십시오. 꼭 이 시집을 읽지 않아도 좋습니다. 시를 읽는 동안 그대들 마음이 바뀔 것입니다. 시를 읽고 나면 그대들 삶이 바뀔 것입니다. 그것은 참으로 놀라운 일입니다. 믿기지 않는다면 시험 삼아서라도 한번 해 보십시오.
분명히 시가 그대들을 도와줄 것입니다. 시집 속의 시인이 그대들 옆자리로 옮겨 앉으며 많은 이야기를 들려줄 것입니다. 시집을 들고 있는 그대들 손이 그 어떤 사람의 손보다도 귀하고 아름답습니다.
이 책은 아주 조그만 책입니다. 그렇지만 나의 시 가운데 가장 좋은 시들만 골라서 담은 시집입니다.
시집은 어떻게 하든 독자들의 손에 잡혀야 하고 시는 또 독자들이 자꾸만 읽어서 독자들의 것이 되어야 합니다. 평소의 생각이 그렇습니다. 시는 사치품이 아니고 실용품이라는 것. 시인은 독자들을 위한 감정적인 서비스 맨이라는 것.
하므로 이 책은 기존의 작은 시집에 실린 시들에다가 인터넷을 통해 독자들이 즐겨 찾아주는 시들을 더 골라서 함께 실었습니다. 더러, 사는 일이 찌뿌둥하고 힘들거나 조각 시간이 생겨 어정쩡할 때 이 시집이 독자들의 손에 들려지기를 바랍니다.
두고두고 윤동주 선생의 시는 우리의 자랑이고 자존심이야. 우리 자신을 높이는 자랑스런 마음이란 뜻이지. 우리에게 윤동주 선생의 시가 없었다면 어쨌을까 싶은 때가 있단다. 그래서 할아버지도 어려서부터 윤동주 선생의 시를 읽어 왔단다. 어떤 시를 읽든지 반듯한 그분의 마음을 느낄 수 있어. 그분의 시를 읽으면 마음이 맑아지고 어떻게 하든지 바르게 살고 맑게 살겠다는 결심이 생기지.
지원아. 이 책은 윤동주 선생의 시 가운데에서 어린 친구들이 읽어서 좋을 시들만 골라서 엮고 거기에 설명을 단 책이란다. 어린 친구들이 읽고 좋은 생각을 하고 좋은 느낌을 갖는 책이 되었으면 좋겠구나.
“우리가 살아가면서 부족한 것이 있으면 빌려서 씁니다.
하지만 빌려서 쓸 수 없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시간입니다. 시간은 가족이나 연인 사이에도 빌려 쓸 수 없는 것입니다. 그만큼 시간이 중요하다는 얘기입니다. 우리의 일생은 순간순간의 시간이 모여서 일생입니다. 인생을 성공적으로 사는 사람은 시간을 잘 사용하면서 산 사람들입니다. 부디 하루하루를 정성껏 소중하게 여기며 살아야 할 일입니다. 그렇지만 너무 허둥지둥 그렇게 살아서는 안 됩니다. 열심히 살되 때로는 여유를 가지면서 살아야 할 일입니다.
빨리빨리, 천천히 살아야 합니다. 급한 일은 급하게 살고 느린 일은 느리게 살아야 합니다. 아닙니다. 열심히, 급하게 살기 위해서는 천천히가 필요하고 때로는 휴식이 있어야 합니다.
당신에게 부지런한 1년을 선물로 드립니다. 더불어 잠시 잠시 쉬어가는 1년을 또 드립니다. 이 1년의 달력, 하루하루의 일력을 살피면서 빨리빨리, 천천히 사시면 좋겠습니다. 그리하여 당신의 1년이 성공하는 1년이 되고 그것이 또 일생의 성공과 보람과 기쁨으로 이어지기를 소망합니다.
당신의 성공하는 1년을 빕니다.” - 머리글 '빨리빨리, 천천히'
이번에 좋은 뜻이 있어 눈물에 관한 시들을 모아 한 권의 시집으로 묶어 내는 계획이 서고 그것을 실행에 옮기게 되었습니다. 방대한 작업이고 매우 섬세하면서도 절실한 작업입니다. 눈물 시집이라? 이전에 이런 시집이 있었던가 모르겠습니다.
바야흐로 우리들 세상이 보다 더 깊어지고 선량해지고 아름다워지려나 봅니다. 아주 많은 시인들의 진실하고도 진지한 가슴에서 우러나온 시, 시의 꽃송이, 눈물의 꽃송이, 그것을 가슴에 안고 우리 또한 잠시나마 아름다워지고 그윽해지고 맑아지도록 합시다.
이것이 눈물 시가 우리에게 주는 최대의 선물이고 살가운 악수이며 우리 스스로 찾아서 갖고자 하는 보물이겠습니다.
2020년 8월 20일
본래 시집 이름은 ‘그럼에도 불구하고’였다. 시집을 정리할 때 내가 붙인 이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네버더레스(nevertheless). 앞부분의 부정적인 상황을 뒤집는 말이 ‘그럼에도 불구하고’다.
이미 판이 기울었거나 나빠졌지만 거기에 멈추지 않고 다시 시작해보자 용기를 낼 때 나오는 말이 ‘그럼에도 불구하고’다. 나는 언제부터인가 이 말을 좋아하고 자주 써 왔다. 그만큼 내가 처한 여러 가지 사정들이 좋지 않았던 탓이다.
그것은 내 개인의 형편만 그린 것이 아니다. 오늘날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 하루하루는 그 무엇도 녹록하지 않다. 위태위태 살얼음판이다. 포기하고 싶지만 포기하지 말아야 한다. 바닥이 난 그 지점에서라도 다시 시작해야 한다. 그러기에 오늘날 젊은이들 입에서는 ‘포기하지 않는 것도 능력이다’란 말이 나돌고 있다.
이러한 정황 속에서 나의 시는 여전히 ‘짧고 단순하고 쉽고 임팩트 있게’에 의존해서 쓰여진다. 2020년 코로나19 기간 동안에 쓰여진 시편들이다. 좀 과하게 썼다. 밖에서 오는 자극이 강하고 복잡해서 그리 되었노라 변명 아닌 변명을 해본다.
실상 내가 바라는 반응이나 변화는 아주 작은 것이다. 한 마리 나비의 나랫짓이거나 벌레의 울음소리 같은 것이다. 이것들이 독자들에게 가서는 큰 울림이 되시기를 소망한다.
이 시집의 시편들은 우선 양문규 시인이 주재하는 문예지 『시에』에 1년 동안 연재되었던 원고들이다. 그때도 역시 양문규 시인의 후의에 의한 것이었는데 시집 출간도 양문규 시인의 보살핌에 의한 것이다. 오래된 우정에 감사드리며 시집 이름 『너 하나만 보고 싶었다』는 양문규 시인이 달아준 이름표이다. 나에게도 고맙지만 독자들에게도 고마운 일이 되기를 바란다.
2021년 새봄에
시는 대단한 것이 아니다. 작아도 좋고 허술해도 좋고 화려하지 않아도 좋다. 문제는 공감이다. 소통이다. 공감은 소통에서 오는 것. 무엇보다도 오늘날 시에 필요한 것은 소통이다.
너와 내가 둘이 아니고 하나라는 것, 나의 문제가 너의 문제이기도 하다는 것. 서로를 응원하고 동행을 허락해야 한다. 그렇다면 사람들이 시를 읽지 않을 까닭이 없다.
내가 자주 하면서 잘하는 것 가운데 하나가 시를 소리 내어 읽으면서 베끼는 일입니다. 그렇게 되면 한 편의 시를 세 번 읽는 것과 같은 효과가 납니다. 눈으로 읽으면서 한 번 읽고 소리 내어 읽으면서 귀로 한 번 더 읽고 베끼면서 또 읽는 것이 그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시가 대번에 마음속으로 들어올 것이고 또 외울 수도 있을 것입니다. … 시를 읽으면서 아름다운 마음이 조금씩 생길 것이고 예쁜 말 고운 말을 조금씩 배우게 되기도 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시 읽고 베끼기는 매우 좋은 공부이고 아름다운 공부가 되는 것입니다. … 여러분들의 아름다운 마음과 하루하루의 삶에 나의 시가 좋은 길동무가 되어 주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합니다. 가끔은 이 책에 실린 글들을 엄마나 아빠와도 나누어 읽는다면 더욱 좋은 일이 될 것입니다.
오로지 전문적인 시조시인의 글이 아니라서 엉성한 구석이 없지 않을 것입니다. 그래도 나는 시조 형식의 글이 아니면 안 되었을 때 시조 형식의 글을 선택해서 썼습니다. 인간의 마음이나 언어란 것이 신비한 구석이 있어서 글로 태어나면서 형식을 골라서 태어납니다.
나의 시조는 나에게 의미 있는 사람, 좋은 사람에게 보내는 마음의 글입니다. 주로 비는 마음과 드리는 마음입니다. 그런 범위 안에서 나의 시조를 보아주시고 읽어주시기 바랍니다. 이 책은 또 내 인생에 있어서 특별한 기념물이 될 것입니다.
읽는 분들에게도 나름대로 인생을 돌아보고 잠시나마 쉬어가는 조그만 마음의 쉼터나 샘물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시집 『막동리 소묘』는 1980년도에 일지사에서 나온 시집입니다. 실은 그 전해인 1979년도에 흙의 문학상 본상을 받은 작품을 모은 시집입니다. 흙의 문학상은 물론 오늘날 없어진 상인데 외람되게도 내가 최초로 본상을 받은 바 있습니다.
이때 심사위원 가운데 한 분이셨던 정한모 선생께서 일지사의 김성재 사장을 소개해주시어 시집이 나오게 되었습니다. 과분하게도 장정이 화려한 시집이었고 또 그 시집은 시골의 무명시인인 나를 세상에 알려주는 고마운 역할을 해주었습니다.
무슨 고집이었을까요. 4행시입니다. 네 줄로만 이루어진 시들이 모여 시집입니다. 예전부터 4행시의 전통은 우리나라에 있었습니다. 김소월, 김영랑 선생의 시에 자주 나타나고 근년엔 박희진, 강우식 시인 등의 시집에서 자주 보이는 시 형식입니다. 그것을 본떠서 시를 쓴 것입니다.
여기엔 나름 사연이 조금 있습니다. 1975년이라고 기억되는 어느 날, 강원도 속초의 이성선 시인을 찾은 일이 있었습니다. 이성선 시인은 자기 고향의 자연에 안겨 호흡이 길고도 맑은 시를 쓰고 있었습니다. 명상시였습니다. 위대한 자연에 위대한 시를 꿈꾸는 젊은 시인이 부러웠습니다.
그러면 나는? 그렇게 하여 나는, 나의 고향과 유년과 나름대로 자서전적 요인 가운데서 최대한 시를 끌어모아 「막동리 소묘」를 이룬 것입니다. 그렇다면 속초의 이성선 시인이 나에게 좋은 자극을 많이 준 셈이지요. 이렇게 젊은 시절엔 또래 시인들이 중요합니다. 하나의 축복이지요.
그런 뒤로 5년 정도 집중적으로 시를 썼습니다. 4행시를 고집했습니다. 이렇게 해서 나온 것이 「막동리 소묘」 185편입니다. 이 작품을 당시, 한국문예진흥원에서 모집하는 흙의 문학상에 응모하여 당선된 것이 이 작품입니다. 비로소 내가 시인이라는 것을 스스로 인식하면서 자존감을 갖게 한 작품입니다. 기념비적인 작품입니다.
이 시집을 낼 때 정한모 선생과 함께 내 시의 적극적 지지자였던 전봉건 선생이 기억납니다. 많은 은혜를 입었는데 그분 또한 지금은 새상에 계시지 않는 분입니다. 2020년이면 이 시집이 세상에 나온 지 40년이 되는 해입니다. 또한 내가 시인으로 활동을 시작한 지 50년이 되는 해이기도 합니다.
그런 핑계로 다시금 책을 냅니다. 해설이나 평설을 넣지 않고 작품만을 넣었습니다. 그 대신 2부로 「벌곡집」을 실었습니다. 이 작품 또 4행시인데 「막동리 소묘」를 쓰고 난 뒤 자연스럽게 흘러나온 작품을 받은 것입니다. 말하자면 울음이 끝난 다음에 오는 흐느낌 같은 작품이라 하겠습니다.
세월은 흐르고 작품만 남았습니다. 사람은 늙고 병들었는데 작품은 여전히 젊고 건강하니 다행입니다. 이들 작품의 등을 다시금 밉니다. 멀리 떠나라. 떠나서 돌아오지 말고 가능한 한 그곳 사람들과 어울려
살며 그곳 사람들의 꽃이 되라. 젊은 날의 시가 있어서 참으로 다행입니다.
낭송은 낭독과는 다릅니다.낭독이 텍스트를 보면서 낭랑한 음성으로 읽는 것을 말한다면 낭송은 텍스트를 외워서 낭랑한 목소리로 읽는 것을 말합니다. 차라리 그것은 읽는 것이라기보다는 읊는 것이라고 말하는 것이 옳을 것입니다.
‘읊다’의 사전 풀이는 이렇습니다.‘억양을 넣어서 소리를 내어 시를 읽거나 외다.’ 그러니까 낭송은 노래에 가까운 책 읽기라 하겠습니다.그러므로 시 낭송은 시를 노래하듯이 읊는 것인데 최근 들어 유행하게 된 문화 장르입…니다.
시를 쓰는 시인들 편에서는 시 낭송가들에게 많은 신세를 지고 있는 셈입니다.시인과 독자 사이에서 시를 더 좋은 쪽으로 표현하여 해석하여 독자들에게 전달해주는 분들이 시 낭송가들이기 때문입니다.언제부턴가 낭송시집을 내고 싶었습니다.다행히 이번에 도서출판 시아북의 김명수 시인이 나의 시만을 골라 낭송시집을 내겠다는 제안이 왔습니다.다만 시를 고르는 문제를 내가 단독으로 할 수가 없어서 세 분 시 낭송가들의 도움을 받았습니다.
김형숙 시 낭송가,오지현 시 낭송가,이선경 시 낭송가가 시를 고르고 시집의 편제를 짜는 일에 전적으로 수고를 아끼지 않았습니다.그러므로 이 책은 나의 책이긴 하지만 세분 시 낭송가들의 책이기도 합니다.감사한 일입니다.
나는 텔레비전을 잘 보지 않는 사람이다. 그러므로 연속극이나 연예계에 대한 소식을 잘 알지 못한다. 그 방면의 까막눈이다. 미안하게도 나는 배우 이종석 씨가 「학교2013」이란 티브이 연속극에서 내 시 「풀꽃」을 낭송한 것도 처음엔 알지 못했다.
나중에 주변 사람들이 보았다면서 나더러 왜 그 장면을 보지 않았느냐 채근하기에 인터넷 유튜브를 통해서 보았다. 억울한 사연으로 전학 갈 수밖에 없는 학우를 응원하기 위해서 「풀꽃」 시를 외우는 남자 배우가 참 멋지고 잘 생겼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연한 기회에 연결이 닿아 이종석 씨와 두 차례 만난 일이 있다. 서울에서 한 차례. 공주에서 한 차례. 첫인상이 매우 유순하고 속이 깊고 주변 사람을 많이 배려하는 사람으로 보였다.
인기 있는 연예인이라 해도 그도 사람이니 살아오면서 왜 어려운 일, 힘든 일이 없었을까. 어려운 일이 있을 때마다 나의 시를 읽고 위로를 받았다니 놀랍고 고마운 일이다. 공주를 다녀간 뒤로 그는 자기의 화보집에 나의 시를 넣어 책을 내보겠다 해서 그렇게 하자고 의견 일치를 보았다. 이 또한 재미있고 유익한 일이 아니겠는가!
참 아름답고 순하고 좋은 이 땅의 연기자, 인기 절정의 한 배우와 함께 책을 내는 일이 기쁘다. 나의 시가 그의 책에 들어가 그의 모습을 더욱 아름답게 깊이 있게 표현해주는 데에 도움이 되기를 소망한다. 시를 알고 시를 읽을 줄 아는 배우 한 사람을 우리가 알게 된 것을 나는 앞으로도 오래 잊지 못할 것이다.
시를 알고 시를 사랑하고 힘든 일, 어려운 삶의 고비마다 시를 읽으며 스스로 감동하면서 위로와 축복을 자청해서 받을 줄 아는 한 젊은 배우를 우리가 가져 우리 자신까지도 행복하고 자랑스럽다. 그의 앞으로의 연기 생활에 영광과 축복이 있기를 빌며 그가 연기자로서 대성하는 모습을 보고 싶다.
사람이 어찌 꿈꾸는 마음 없이 사람일 수 있을까?
사랑하는 마음 없이 사람일 수 있을까?
적어도 나에게 꿈꾸는 마음과 사랑하는 마음은
생명을 지탱해주는 영혼의 양식과 같은 것이다.
꿈꾸는 마음과 사랑하는 마음으로 생명의 끝장까지 가리라.
날마다 나는 누군가를 사랑하고 그 사랑의 빛으로 하여
또 날마다 구원 받는 사람이고 싶다.
선한 영향력을 위하여
대전에서 도서출판 시아북을 운영하는 김명수 시인은 나로서는 반세기도 넘는 오랜 세월 동안 우정을 나누며 지낸 글벗이다.
그런 까닭으로 이번에 새로운 시선집 원고 한 권을 그에게 드리기로 했다. 마침 8월 말에는 나의 시 「대숲 아래서」를 돌에 새겨 막동리 고향 집에 시비로 세우는 일이 있다. 시비 세우는 일 또한 김명수 시인이 수고해서 이루어진 일이라 겹으로 고마운 마음이 아닐 수 없다.
우선은 시비 세우는 날, 오신 손님들에게 선물로 드리고, 더불어 시중의 서점에 보내어 판매도 하겠다는 의도가 있다. 부디 이 책이 독자분들에게 잘 선택되고 읽혀서 피차간 좋은 영향을 주었으면 싶다.
선한 영향력. 그것은 오늘날과 같이 살기 각박하고 마음이 막막한 시절에 더욱 필요하고 그리운 인간의 마음이요 덕성이다. 그러하다. 이 시집이 세상에 선한 영향을 드렸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
2023년 處暑 무렵
나태주 씁니다.
충분히 안 쓰고 넘어가도 좋을 문제를 가지고 글을 써보려고 한다. 차라리 덮어버리고 넘어가는 편이 여러 가지로 이로운 일일 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위태롭기까지 한 이야기들, 사랑에 관한 이야기이다. 남자와 여자에 관한 이야기이다.
사랑의 이야기는 언제든 누구의 이야기든 조금쯤은 위험하다. 안 위험해도 위험하다. 그러나 사랑의 이야기는 위험해도 안 위험하다. 언젠가는 스스로 제자리를 찾아가는 것이 사랑의 이야기다. 그만큼 사랑의 이야기는 지향 없고 삐딱하다.
한 번도 나는 사랑의 문제에 대해, 남자와 여자의 문제에 대해서 그 본질을 꺼내어 써보지 못했다. 변죽을 울리거나 빙빙 돌려서 은유적으로만 표현했을 뿐, 번번이 그 핵심을 어물쩡 비껴가곤 했다. 조금은 답답한 일이고 비겁한 일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사실 시의 형식이 그것이다. 실상 나는 아주 많은 시를 썼다. 사랑의 시도 많이 썼다. 더러는 나더러 ‘사랑의 시를 가장 많이 쓴 시인’이라고 말하는 이들도 있다. 그러나 시 가지고는 안 되는 부분이 사랑의 여러 가지 일들, 그 이야기 속속들이 속에는 있다.
담백하게 쓰고 싶다. 용기를 내어 쓰고 싶다. 가능하다면 아름답게 치열하게 쓰고 싶다. 마치 사막의 중심부를 수통 하나에 의지하여 통과하는 사람처럼 그렇게 쓰고 싶다. 과연 나는 이 글을 끝까지 쓸 수 있을 것인가? 스스로에게 의문을 갖는다.
우선 먼저, 나 자신부터 감동받는 글을 쓰고자 한다. 그것이 늘 글을 쓸 때의 첫 번째 소망이다. 감동 받는 글을 쓰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진정성이 선행되어야 한다. 진정성이란 ‘참되고 애틋한 정이나 마음’을 말한다. 과연 나의 글이 진정성이 있고 감동을 주는 글이 될 수 있을까? 과연 그런지 안 그런지 슬아, 네가 판단해주었으면 좋겠다.
그러나 가는 데까지는 가보고 싶다. 사랑하는 마음, 그리운 마음, 안쓰러운 마음이 좀 나를 도와주었으면 좋겠다. 슬아, 네가 날 좀 도와주어야겠다. 왜 내가 너를 사랑해야만 했는지, 그럴 수밖에 없었던 까닭을 쓰고 싶다. 어떻게 사랑했는지, 그 과정을 밝히고 싶다. 우리 같이 가자. 책의 끝부분까지 손잡고 함께 가보자. 부탁한다.
나는 울보다. 기쁜 일에도 울고 슬픈 일에도 울고 아름다운 이야기에도 울고 슬픈 이야기에도 운다. 나는 왜 매미가 해마다 여름이 가려고 할 때쯤이면 기승을 부리며 울어대는지 그 까닭을 미처 알지 못했다. 얼마 남지 않은 목숨을 아끼고 사랑하기 위해서 매미가그렇게 성화를 부리며 운다는 걸 알게 된 것은 의외로 요즈음 얼마 전이다.
다시 책을 꾸미며
이 책은 이미 2008년도에 나왔던 『꽃을 던지다』란 이름의 책을 재편집한 책입니다. 당초에 나온 책에서 3부의 글을 이 책에서는 1부로 했고 두 번째 투병 생활의 기록을 2부로 했습니다. 그리고 3부에는 병상에서 쓴 시들을 모았습니다.
이렇게 해서 나의 투병기는 완성되는 셈인데 이 책이 한때 몸을 부리고 힘들게 앓고 있는 분들에게나 하나님에 대한 의심으로 괴로워하는 분들에게 조그만 길잡이라도 되었으면 합니다.
그야말로 이 책은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쓰여진 글들이 모인 책이며 나 자신 기적을 체험한 내용들임을 의심하지 않습니다. 어찌 자신의 육신과 영혼의 병을 두고 거짓증언 하겠습니까! 다시금 하나님께 감사한 마음을 밝힙니다.
2019년
나 태 주 씁니다 - 프롤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