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교장의 아들로 태어난 브루크너는 어려서부터 아버지에게 음악을 배우기 시작했다. 10세 때 이미 교회에서 오르간을 연주했던 브루크너는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후 수도원의 소년 성가대원이 되었다. 브루크너는 1855년 빈으로 가서 [미사곡]을 작곡, 성공하자 교원생활을 그만두고 음악에 정진하였다.
브루크너는 독실한 가톨릭 신자로서 속세에서 벗어나 음악과 신앙 생활을 영위하였다. 단지 오르간 연주자로서 이름을 날렸을 뿐 작곡가로서는 만년에 이르러서야 인정을 받았다. 그는 근대 종교 음악의 일인자로 대위법의 대가이기도 했다.
최근에 와서 브루크너는 교향곡의 최대 작곡가 가운데 한 명으로 인정받기 시작했는데 그의 교향곡은 자연스러운 멜로디에, 변화가 풍부하고 생동감있는 리듬이 특징이다. 주제와 기악의 대조또한 그의 작품의 특징이라 할 수 있다. 교향곡의 바그너라고 불리우는 브루크너는 독일 정신을 최대로 음악화한 후기 낭만파의 대가라 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