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년대 영국의 프리시네마 운동의 기수. 영국뿐만 아니라 현대 유럽을 대표하는 좌파 감독. 역사적 사건으로 거슬러 올라가 지나치게 큰 화두를 놓고 씨름하는 최근의 영화는 밀도가 떨어지기는 하지만 노동자들의 일상을 묘사한 로치의 대표작들은 아주 뛰어나다.
그는 선동을 원하지는 않지만 노동자들이 실제로 어떻게 살고 있는지, 그들이 일상에서 부딪치는 문제는 무엇인지를 한목소리로 담아왔다. 사회주의적 가치의 희망을 버리지 않았던 그의 영화는 세계의 변화를 외치는 십자군 역할을 자임했다. 로치의 영화인생은 삼십년 넘게 노동자 계급의 목소리를 찾아주기 위해, 노동자 계급의 실제 삶이 어떤 것인지를 보여주기 위해 대중매체쪽에서 점점 입지가 좁아지는 좌파의 자리를 훌륭하게 지켜왔다.
그는 영국영화와 텔레비전 드라마의 발전을 이끌어왔지만 70년대 중반까지 작품을 발표할 때마다 늘 검열과 맞서 싸웠고 다음 작품의 제작비를 마련하기 위해 고군분투했다. 본격적인 영화 연출은 67년의 <불쌍한 암소>. 이 시점부터 그는 영국노동계급을 위한 영화를 만들기 시작했다. 다큐멘터리 기법에 직업배우가 아닌 인물들을 케스팅해서 영국하층계급에 일상을 그려온 70년대의 그의 일관된 작업은 보수파의 주역이었던 대처수상 집권기간인 80년대에 들어와 강화된 검열로 노조 운동을 다룬 4부작 다큐멘터리 <리더쉽의 문제들>과 광부들의 애환을 다룬 <당신은 누구편입니까> 등등 많은 작품들이 시련을 겪어야만 했다.
90년도에 <히든 아젠다>로 컴백해서 칸 심사위원상을 수상한데 이어 두 중년 실업자의 해프닝을 그린 <레이닝 스톤> 그리고 사회 사업가들에게 아이들을 빼앗긴 한 어머니의 이야기 <레이드 버드, 레이드 버드> 등 90년대에 활발한 활동을 해 오고 있다. 그는 사회에 대한 일관된 관심을 보이며 자신의 좌파적인 역사관, 이념을 영화를 통해 실천하는데 주저하지 않고 있다.
95년 칸에서 국제 비평가상을 획득한 <랜드 앤 프리덤>은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이후 스페인 내전을 다룬 작품인 동시에 켄 로치 감독 자신이 영국 외로 시선을 돌린 최초의 작품이기도 하다. 2006년에는 그의 연출 인생의 정점을 보여주는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으로 2006년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수상, 유럽을 넘어 세계적인 감독으로 우뚝 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