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고난 반항아로 헐리우드에서 이단자 취급을 받으면서도 독특한 개성과 뛰어난 연기력으로 자신만의 아성을 개척한 명배우이다. 20세기 최고의 카리스마적인 배우의 하나.
1954년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에서 그는 이 작품으로 두번째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비비안 리 못지않은 명연으로 남우주연상 후보에 올랐다. 헐렁한 옷에 거치른 매너는 바로 작가 테네시 윌리암스가 그리려던 남부의 건달 코왈스키 그대로였다. 52년에는 <혁명아 사파타>(칸느-남우주연상 수상), 53년에는 <줄리어스 시저>로 연속 아카데미상 후보에 오르다가, 마침내 54년에 <워터프론트>에서 건달이었다가 사랑과 진실을 깨닫는 부두노동자 역으로 아카데미상을 수상했다.
그후로도 그는 영화와 사생활 모두에서 기존의 헐리우드 스타들과는 전혀 다른 반항적이고 이단적인 모습을 보였다. 57년에 <사요나라>로 다시 아카데미 후보에 올랐고, <애꾸눈 잭>에서는 감독도 맡아서, 종래의 서부극과는 전혀 다른 신선한 감각을 보여주었다.
72년 <대부>에 코폴라 감독의 고집으로 캐스팅되어, 일생일대의 명연으로 아카데미상에 수상자가 되었으나 이를 거부하여 다시 한번 화제가 되었다. 73년에도 논란의 대상이 된 화제작 <파리에서의 마지막 탱고>로 다시 후보에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