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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그리드 버그만(Ingrid Bergman)스웨덴의 스톡홀름에서 출생을 한 잉그리드 버그만은 2살이 되던 해 어머니를 잃고 사진관을 경영하던 아버지와 함께 어린 시절을 보냈다. 그러나 12세때 아버지 마저 세상을 떠나 그녀는 숙부의 밑에서 자라났다. 1933년 스웨덴 왕립 연기학교(The Royal Dramatic Theater)에 입학을 해 연극을 공부하기 시작한 그녀는 배우가 되기에 부적합 한 자신의 핸디캡을 극복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을 했고 결과, 1934년 [Munkbrogreven]으로 영화에 데뷔를 했다. 이 영화로 인해 스웨덴에서 촉망 받는 여배우로 자리매김을 하게 된 그녀는 구스타프 몰란더스의 [인터메조]를 통해 자신의 이름을 널리 알렸다. 이후 1939년 헐리우드로 진출을 하게 된 그녀는 [레슬리 하워드]와 [인터메조]등에 출연하면서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를 제작한 데이비드 셀즈닉에게 주목을 받게 된다. [아담의 네 아들], [천국의 분노], [지킬 박사와 하이드]에 출연하면서 연기 세계의 폭을 넓힌 그녀는 1942년 파라마운트 창사 50주년 기념 대작인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에 캐스팅이 될 뻔 했지만 그만 중도에 탈락을 하게 되고 같은 해 제작된 [카사블랑카]에 출연하게 된다. [카사블랑카]가 그녀의 출연으로 인해 성공을 하게 되자 파라마운트는 다시 그녀를 캐스팅해 그녀는 자신의 소원이었던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에 게리 쿠퍼와 함께 출연하게 된다. 그녀는 이 영화로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에 노미네이트 된다. 그 후 이듬해인 1944년 [가스등]으로 첫 번째 아카데미 여우 주연상을 수상한다. 연이어 그녀는 게리 쿠퍼와 함께 [Saratoga Trunk]에 출연을 하고, 그레고리 팩과 함께 출연 한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의 [스펠바운드]에서는 정신과 의사 역을 맡기도 했다.
대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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