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을, 자유를, 진리를 찾는 삶을 산 것 같다. 어떤 직업이 그것을 주지 않을 것 같으면 그냥 그만두었다. 그래서 많은 직업을 가지게 되었다.
종교 생활도 하였다. 처음에는 스승을 예수로 한 종교였다. 나중에는 스승을 붓다로 한 종교를 알고자 하였다. 명상이 궁금하였다. 명상을 제대로 알고자 40대 초에 인도로 가게 되었다. 그곳의 수행들을 보고 놀랐다. 그래서 이번 생애에 수행의 끝에 이르기를 포기하였다.
고국으로 돌아오고자 뉴델리로 왔다. 붓다의 나라에서 다시 돌아온다는 것이 너무나 애석하였다. 수첩을 뒤적이다가 한분의 이름을 찾았다. 그 다음 날 그분을 만나기 위하여 하리드와르로 가고 있었다. 하리는 신 크리슈나의 다른 이름이다. 그때 나는 진리에 목이 말라 있었다. 나는 그러한 상태에서 깨달음을 얻은 스승을 만나러 가고 있는 것이었다.
10시 30분경에 그곳에 도착하였다. 파파지께서는 깨끗한 모습으로 침상에 홀로 앉아 계셨다. 나는 그분의 발 아래로 바로 들어가게 되었다.
“어디를 다녔습니까?”
“여러 곳을 다녔지만 라마나스라맘에 오래 머물렀습니다.”
라마나스라맘을 이 분은 아실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였다. 이곳은 남쪽의 아루나찰라 산기슭이 아니라, 북쪽의 갠지스 강가가 아닌가….
“저는 쉬고 싶습니다.”
“그렇다면 이 아래에 호텔이 있는데 거기로 가서 여장을 풀고 목욕하고 쉬십시오.”
그때쯤에야 마음이 귀중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렇다고 마음 너머의 무엇을 경험한 것도 아니었다. 그래서 몹시 피곤하였다.
“저는 몸이 피곤한 것이 아니라 마음이 피곤합니다.” 깊은 눈동자를 나에게 주시면서 “그대는 몸이 아닙니다. 그대는 마음이 아닙니다.”
마음 너머에 계시는 분이 진리를 말씀하셨다. 그분의 말씀은 말씀이 아니라 바로 은총이셨다. 진정한 스승을 나는 만난 것이었다.
내가 마음이 아니니 앞의 분이 사라졌다. 그 방도 사라졌다. 세상도 사라졌다. 나의 마음이 사라졌다. 나의 마음 너머에 있는 다른 차원으로 갔다.
끝이 보이지 않는 빛나는 바다, 황홀경의 바다만이 있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 나는 모른다. 그 상황을 지켜보고 계시든 스승님께서는 웃으시면서 되돌아온 나에게 한 말씀을 하시다.
젊은 날에 영혼을 울린
두 권의 책이 있었다.
한 권은 헤르만 헷세의 데미안이었다.
다 읽었다.
그 소설에서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투쟁한다.
그 알은 세상이다.”
알은 알로 있는 한
새는 없다.
나는 그 말에 너무나 감동을 받았다.
그러한 경지가
인간에게 있다는 말에 충격을 받았다.
또 한권의 책은 타고르의 기딴잘리였다.
1번의 시를 읽는데
“갈대피리”란 단어를 접하고
더 이상 읽지 못했다.
세월은 흘러 서울역 앞
아름다운 대기업 사옥에서 근무했다.
믿음이 가는 분에게 물어보았다.
“제가 이 직업을 계속 가져도 될까요?”
그분의 답은
손가락까지 튕기면서
“아니요.”
남산의 국립국악원으로 가서 단소를 배웠다.
단소를 들고
나는 떠날 것이다.
나도 모르는 곳으로.....
수덕사로, 강원도로, 제주시로, 서귀포로, 부산으로,
창원으로, 다솔사로, 송광사로, 인도의 뉴델리로, 알란
디로, 이가따뿌리로, 뿌네로, 봄베이로, 브린다반으로,
아루나짤라로, 오로빌로, 타고르 마을 샨띠 니께딴으로,
꼴까따로, 하리드와르로.
하리드와르의 갠지스강가에서
어느 분이요
저를 사라지게 한 뒤
무엇을 보여주셨어요.
여정을 서둘러 멈추고
일터로 돌아왔다.
이제는 은퇴하고
시골집에서 기거한다.
붉은 파인애플 세이지의 꽃들이
만발한 공터에 앉아
기딴잘리를 마저 읽다가
나의 기딴잘리를 만들고 싶었다.
2020년 11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