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와 맞서는 두려움을 이기는 방편으로, 혹은 그 시대로부터 도주하는 방법적 전략으로, 더 많은 시간이 흐른 뒤에는 읽기의 리듬을 어렴풋이 감지하게 되면서, 가느다란 실핏줄처럼 이어지고 있는 생명의 흐름에 대한 감각의 ‘리트로넬로’를 예감하면서 도Tao의 아포리아aporia에 가까워졌다. 단언컨대, 노자를 읽고 쓰는 일은 내가 감당할 일이 아니다. 그러니 작업은 지극히 위태롭고 불안하며…, 그 와중에도 흡사 관음의 상황이 연출하는 미묘한 감정 상태를 지속하는 마음, 향유jouissance가 있었다. 그 에로스가 없었다면 돌팔매의 각오를 견디지는 못했을 것이다. 내 일은 근본적으로, 무엇보다 관행적 노자 해석과는 거리가 멀다. 분단체제 이후 즉 ‘통일이행기의 한국: 문학과 정치-에코 아나키’ 프레임에 관한 지도를 그려가기에도 힘겨운 나로서는 외람되지만 이 토픽을 부여잡고 방황할 약간의 시간까지도 숨가쁘고, 그만큼 난감하다. 그러나, 그럼에도 어찌하여 불안을 견디는 리비도가 작동한 것일까. 아마도 그것은 노자 해석이 아니라 노자의 리듬에서 느껴지는 생명에 관한 모티브 때문이라고 말해야 옳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