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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문보1303년(충렬왕29)∼1374년(공민왕23). 고려 말기의 문신으로, 본관은 직산(稷山), 자는 화보(和父), 호는 담암(淡庵)이다. 충숙왕 때 문과에 급제, 춘추 검열(春秋檢閱)을 거쳐 우상시(右常侍)에 이르렀다. 공민왕 초에 전리판서로 있으면서 사마광(司馬光)의 ‘십과취사(十科取士)’ 제도에 따라 관리를 뽑을 것을 주청하였다. 1373년(공민왕22) 우왕(禑王)이 대군이 되어 취학하자 전녹생(田祿生), 정추(鄭樞)와 함께 그의 사부(師傅)가 되었고, 정당문학(政堂文學)에 이르러 직산군(稷山君)에 봉해졌다. 성품이 청렴결백하고 정직하며 불교의 폐단을 힘써 질책하였고 문장에 뛰어났다. 시호는 충간(忠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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