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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국내저자 > 번역

이름:정영희

국적:아시아 > 대한민국

출생:1976년, 대한민국 부산

최근작
2024년 1월 <노견을 위한 도그 마사지의 힘>

정영희

동국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했다. 강원도 곰배령에서 제주로 터전을 옮기고, 복실이라는 강아지와 함께 제주에서 유기농으로 귤 농사를 지으며 살고 있다. 일본어로 된 좋은 책을 만나면 호미 대신 노트북을 펴고 한국어로 옮기는 작업을 하고 있다. 옮긴 책으로는 《집을 생각한다》, 《다시, 나무에게 배운다》, 《강아지 탐구생활》, 《고양이 탐구생활》, 《디자인이 태어나는 순간》, 《할머니의 행복 레시피》, 《건축이 태어나는 순간》, 《우리는 작게 존재합니다》 등이 있다.  

대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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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의 말

<젊은이들이 모여드는 산골기업 군겐도를 말하다> - 2020년 6월  더보기

스물여덟, 여러 우연이 겹치며 산골 생활을 시작했다. 초가을부터 시작한 눈이 이듬해 5월에야 다 녹는 강원도의 첩첩산골이었다. 아궁이를 때서 방을 데웠고 샘터에서 끌어온 물을 받아 식수를 해결했으며 동네 사람들이 자구책으로 연결한 사설 전화선으로 외부와 소통하며 살았다. 스물일곱 해를 도시에서만 살았던 나로서는 매일 매일이 새로웠다. 머리가 아니라 몸을 쓰며 살았다. 불땀 좋은 나무에 대해 배웠고 먹을 게 열리는 나무에 대해서 배웠다. 도끼질을 할 때는 옹이를 피해 내리쳐야 한다는 것도 배웠다. 책으로 쌓은 지식은 때로 유용했으나 대개는 태부족이었다. 내가 발견한 ‘풀’이 나물인지 독초인지 알기 위해서는 이웃집 순녀 할머니네로 가면 됐다. 도감에는 없는 풀이었지만 ‘배앓이 할 때 댓뿌리 캐서 폭폭 다려먹으면 된다’는 순녀 할머니 말은 언제나 믿음직했다. 어쩌면 그때부터였을지도 모른다. 나는 언제나 할머니들의 이야기가 좋았다. 그다음으로 좋은 건 할아버지들의 이야기였다. 할아버지들은 대체로 허풍을 버무리기 때문에 외길에서 만난 멧돼지가, 외길에서 싸운 멧돼지로 둔갑하기도 했다. “내가 왕년에 말이지”가 자주 등장한다는 공통점도 있었다. 그런데 할머니들은 “그땐 그랬지 뭐. 별거 있간디?”하는 말투로 밭에서 김매다가 막내딸을 낳았다는 이야기를 했다. 그러다가 우수수, 일기장에 적어두고 싶은 말들이 내 앞에 쏟아졌다. “산에 뻗대면 안 돼. 산이 주는 대로 먹고, ‘아이고 감사합니다’ 그러고 살면 돼.” 할머니, 할아버지들의 말에는 살아온 인생만큼 꾹꾹 눌러 담은 진실이 있었다. 13년의 산골 생활을 접고 나는 지금 제주에 살고 있다. 적당한 밭을 빌려 귤 농사를 짓고 짬짬이 번역 일도 한다. 초록 청귤에 얼룩얼룩 귤색이 들기 시작할 무렵 ‘군겐도 할머니’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산골에서 기업을 일으켜 일본 전역에 매장을 늘려가는 멋진 할머니라고 했다. ‘산골’과 ‘할머니’라는 단어만으로도 가슴이 뛰었다. 당장 원서를 받아 밤을 새워 읽었다. 그리고 다른 지점에서 놀랐다. 군겐도를 창업한 마쓰바 도미는 우리가 흔히 알던 사업가가 아니었다. 이익에 방점을 찍고 확장에 재화를 쏟아붓는 보통의 사업가와는 달랐다. 거의 정반대 편에 위치해 있다고 해도 좋을 사람이었다. 그런데도 그녀는 쇠락해가던 이와미의 산골에 100명이 넘는 고용을 창출해냈으며 젊은이들이 스스로 찾아오는 마을로 만들었다. 이 첨예한 자본주의 시스템에서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 이와미라는 산골에 사람들이 몰려드는 건 어떤 힘 때문일까? 이 질문이 이 대담집의 출발점이었다. 어린 도미는 그림 그리기를 좋아했다. 사람들이 상식이라 여기던 것들을 달리 보는 아이였다. 상식의 눈에 그녀의 그림은 ‘아이답지 않은’ 그림이었다. 마쓰바 도미는 만들어진 틀을 천성적으로 거부하는 사람이었다. 예술적으로 예민한 촉수를 지닌 사람이기도 했다. 새로운 것을 두려워하지도 않았다. 고등학교 졸업 후 도시로 나간 도미는 화구점과 갤러리에서 일을 하며 장사꾼의 감각을 익혔다. 그녀의 20대는 예술적 감각이라는 씨줄과 장사꾼의 면모라는 날줄이 교차되며 하나로 직조되던 시기였다. 크고 작은 성공을 맛봤다. 그대로 도시에 살며 커리어를 쌓았어도 흔히들 말하는 부와 명예를 거머쥘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부족함을 느꼈다. 의심이 들었다. 경제 활황으로 돈이 넘쳐나는 세상이었지만 그것만이 다는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자본과 사람이 도시로 흘러가던 그때, 마쓰바 도미는 도시를 떠났다. 어린 딸의 손을 잡고 남편과 함께 이와미 산골로 향했다. 사람들이 말하는 상식에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 도미였기 때문에 그런 선택을 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렇다고 거창하고 원대한 꿈을 품었던 건 아니다. 일단은 먹고 살아야 했다. 그날그날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에 최선을 다하며 살았다. 지역민들과 함께 아플리케 소품을 만들어 팔았고 시대에 쓸려가지 않기 위해 군겐도를 만들었으며 망가져가는 옛집들이 안타까워 이와미의 빈집들을 고치기 시작했다. 그런 그녀의 성실한 40년이 지역을 살리는 불씨가 됐다. ‘지역재생’, ‘공생’, ‘선한 기업’이라는 슬로건을 내걸지는 않았으나 그녀의 발걸음은 자연스레 그쪽으로 향했다. 그녀 자신이 그런 사람이었으니 목소리를 높여 주장할 필요도 없었다. 당장의 이익은 그녀를 움직이는 원동력이 아니었다. 그녀는 속도와 경쟁하지 않았다. 효율성에 함몰되지도 않았다. 매 순간 좀 더 선한 것을 선택해 왔다. 느리고 비효율적이라고 내치지도 않았다. 그녀를 찾아온 젊은이를 품어 안으며 다음 시대를 모색했다. 옛것과 새것의 조화를 꾀하며 오래되었으나 낡지 않은 세상을 만들어나갔다. 여성복 브랜드로 시작한 군겐도는 이제 라이프스타일 전반을 아우르는 브랜드로 성장했다. 사람들은 이제 그녀가 만든 물건뿐만 아니라 그녀의 삶까지 본다. 속도와 이익과 효율성이 전부가 아닌 세상에 대해서도 생각해보게 된다. 그녀는 자신의 삶을 살았고 느리지만 확실한 변화를 일궈나갔다. 그녀의 옷, 그녀의 부엌, 그녀의 말은 마쓰바 도미와 정말 잘 어울린다. 마쓰바 도미는 머리로 하는 말이 아니라 몸으로 살아낸 말을 하는 사람이다. 어려운 말을 쓰지도 않는다. 굳이 인생 철학을 논하지도 않고 애써 자신을 치장하지도 않는다. “여기 시집올 때 얘긴데”하며 시작하던 순녀 할머니 이야기 같다. 그러면서도 그저 옛날이야기에 머무르지 않는다. 그녀의 옛날이야기는 나의 지금으로 치환되어 갔다. 마쓰바 도미는 주어진 환경과 조건에 순응하면서도 그 자리에 안주하지 않았다. 의심이 들면 의심의 머리채를 잡고 돌파해나갔다. 그녀의 인생을 들여다보다가 ‘아!’ 하고 반짝이는 것들을 발견한 시간들이었다. 그녀의 말을 읽고, 생각하고, 옮기는 과정들이 즐거웠다. 열두 살 도미는 애틋했고 스무 살 도미는 흥미로웠다. 서른, 마흔, 쉰, 예순의 도미는 내게 끊임없는 영감을 줬다. 이제는 일흔이 됐을 마쓰바 도미. 그녀의 이야기가 계속 궁금한 까닭은 그녀가 한자리에 머물러 안주하는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 세월 동안 쌓였을 그 무언가, 몸으로 살아내 꾹꾹 담아낸 진실이 그녀의 말 속에 담길 것을 알기 때문이다.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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