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지니아주 출신인 제임스 매디슨은 프린스턴 대학을 2년 만에 졸업하고, 36살의 나이에 버지니아주의 대표로 필라델피아 헌법회의에 참가할 정도로 뛰어난 엘리트였다. 헌법회의에 참가하고 난 후 버지니아주 출신임에도 불구하고 해밀턴을 도와 뉴욕주에서의 새헌법의 비준을 위해 “페더럴리스트 페이퍼스”를 신문에 게재하였고 새헌법이 뉴욕주에서 비준되는 데 많은 공헌을 하였다.
헌법이 비준된 후 매디슨은 제3대 대통령 토머스 제퍼슨 밑에서 8년간 국무장관을 지냈으며, 그 후에는 제4대 미국 대통령에 당선되어 8년 동안 재임하였다. 제임스 매디슨은 미국 역사에서 미국 헌법의 아버지로 불릴 만큼 미국 헌법의 많은 이론적·사상적 토대를 마련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페더럴리스트 페이퍼스” 내용을 보면 해밀턴은 매우 강력한 연방정부의 필요성을 주장하는 부분이 두드러지는 반면, 매디슨은 해밀턴의 강력한 주장을 어느 정도 완화시켜 새헌법의 반대자들을 자극하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부분들이 있음을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