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혹이 되던 해 소설 공부를 시작했다. 그동안 ‘장편소설’ 『표절』,『물북소리』 ‘단편소설집’ 『미노타우로스』,『허물』,『핑크 몬스터』,『언니들은 가볍게 날아올랐다』 ‘스마트소설집’ 『그림이 내게 와서 소설이 되었다』,『찰나』를 출간했다. 아직 히트작은 없다. 인세로 밥을 먹겠다는 각오로 쓰다 보니 어느새 16년이 흘렀다. 아직 포기는 이르다. 나를 몰라보는 예술은 짧지만 내 인생은 길 것이다.
정적(靜寂)과 정적(政敵)의 실체를 소리로 풀어낸 이야기
2017년 겨울, 오롯이 혼자가 되어 백련산 자락에 집필실을 마련하고 접촉의 흔적을 남기지 않고 심리적, 물리적으로 타격하는 ‘소리 무기’에 관한 단편 소설 초고를 완성했다. ‘소리 무기’를 예로 들자면 비무장 지대에서 활약했던 대남?대북 확성기다. 단편 소설의 이야기는 사운드 아트 작업을 하는 예술가가 소리라는 매체를 선전과 폭력의 도구로 사용하는 확성기를 소재로 자신의 환청을 시각적으로 표현하는 내용이었다. 그 이야기에 소리 자체가 지니고 있는 아름다움과 폭력의 아이러니를 구현하려고 여순 항쟁과 제주 4·3 민주화 항쟁을 배경으로 끌고 왔다. 그때 민주화 항쟁의 외침이 환청처럼 들렸다. 아름다운 공간에서 자행됐던 폭력의 아이러니 때문은 아닐까.
그동안 나에게 제주 4·3 민주화 항쟁은 길을 가다 맞닥뜨린 어느 일인 시위자의 아무도 쳐다보지 않는 피켓 같은 이미지였다. 얼마나 답답했으면 저렇게 나왔을까 하며 눈길을 주었을 뿐 관심이 없었다.
2018년 4월 1일 「제주 4·3 70주년 특집 제6회 독립영화, 시詩 봤다!」를 보았다. 일·이 부 프로그램이었던 조성봉 감독의 다큐멘터리 「레드 헌트」를 보면서 영화처럼 등장인물의 삶을 엿보며 감정을 대입하는 방식이 아니라 냉정하게 카메라를 따라가면서 과거와 현재를 인식하게 되었으나 제주 4·3 민주화 항쟁은 그저 가슴 아픈 역사일 뿐이었다. 3부 프로그램은 제주 4·3 항쟁 70주년 기념 복원판 시집을 들고 나온 이산하 시인과의 대화였다. 그날 사회자 윤중목 시인은 “정치적 금기의 소재를 떠안으며 역사적 진실을 밝히는 저항의 최선봉에는 무엇보다 문학이 있었음을 주목하게 된다면서 거기에는 『한라산』의 시인 이산하가 있다.”고 했다. 한국 현대사를 머뭇거림 없이 표현하는 시 속에 진실을 말하는 고통을 느꼈다. 우리에게 미국은 그저 친하게 지내면 좋은 나라일 뿐이라는 생각을 다시 확인했다. 또한 해방, 제주 4·3과 여순 민중 항쟁을 중심으로 가슴 아픈 역사의 실상과 배경을 일목요연하게 담아낸 도올 김용옥의 『우린 너무 몰랐다』에서 이야기의 맥락을 잡을 수 있었다.
이야기를 전개하면서 알레고리 형식을 시도하다가 사실에 기반을 둔 직접적 표현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기로 했다. 그것은 역사를 돌아볼 여유가 없는 사람들이 이 작품을 읽고 제주 4·3 민주화 항쟁에 조금이나마 관심을 두길 바라는 욕심 때문이었다. ‘소리 무기’에 관한 단편 소설 초고를 제주 4·3 항쟁이 배경인 장편 소설로 개작하면서 내가 무거운 주제를 다룰 능력이 있는지 계속 되물었다.
이 장편 소설의 초고를 완성하자 불안감이 엄습했다. 제주 4·3 민주화 항쟁이 시작된 지 칠십 년이 지난 지금 그 의미는 무엇인가? 거대 권력이 이데올로기 싸움으로 포장했지만 제주 4·3민주화 항쟁은 제주도민과 외세의 싸움이었다고 생각한다. 아픈 역사를 공부하고 피해자, 희생자 가족의 고통에 동참하겠다는 마음으로 작품을 마무리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