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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가위진남북조(魏晉南北朝)시대 도가(道家)의 방사(方士)이다. 고향 농서(?西) 지역은 현재 감숙성 위원(渭源)현에 해당한다. 평소 오곡을 먹지 않았고 속세를 떠나 굴속에서 호흡 수련하며 지냈다. 그가 머무는 곳마다 제자를 자청하는 사람들이 구름처럼 몰려들었다고 한다. 전진(前秦) 때 잠시 세상으로 나와 선소제(宣昭帝) 부견(?堅, 357∼385)을 보좌했는데 부견이 그를 상당히 존경했던 것으로 알려진다. 후진(後秦)의 무소제(武昭帝) 요장(姚?, 384∼393)이 왕가의 예언을 잘못 해석하고 어이없이 죽인다. 장례식 때 왕가의 관에는 시체 대신 대지팡이만 들어 있었으며 장지(葬地)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 언덕을 오르는 그를 보았다고 한다. 불로불사(不老不死)와 장생(長生)에 대한 환상으로 왕가의 죽음이 다소 신비화되었을 수도 있으나 ≪습유기(拾遺記)≫만은 절찬리에 애독되었다. 원래 19권이던 ≪습유기≫ 원본이 전란으로 사라지자 양(梁)의 소기(蕭綺)가 남은 책을 다시 편집해서 10권으로 제작한 판본이 지금 전해진다. 대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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