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르트, 뒤라스, 푸코 등 프랑스의 문필가들은 자기 글쓰기의 시원으로 블랑쇼를 들곤 한다. 블랑쇼 선집이 번역된 것은 21세기 한국 출판계에서 큰 성과인데, 그중 『우정』은 바타유를 비롯한 여러 인물 속으로 깊이 들어가 저자와 인물 간의 관계를 새롭게 정립하며 ‘우정’이란 단어의 의미를 바꿔놓는다. 우정은 사귐이지만 그것은 눈맞춤이나 악수로 깊어질 수 없고, 사교활동으로 맺어질 수도 없다. 이 사귐에는 반드시 읽기와 쓰기가 개입되어야 한다. 너와 나 사이에 글이 결여되어 있다면 서로 감각도, 정서도, 지성도 자극하지 못해 우정은 성립되지 않을 것이다. ‘쓰지 않는 고급 독자’라는 말이 모순이듯이, ‘읽고 쓰지 않는 이들 간의 우정’도 아이러니다. 21세기에도 독자들은 끊임없이 블랑쇼로 돌아가야 할 이유가 여럿 있다.
이은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