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문학상 수상작가 아니 에르노와 그녀의 연인인 마크 마리가 함께, 관계 후 어지러진 풍경을 사진 찍고 사진 위로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들을 글로 담은 이 책은 사랑을 나누고 난 후 남은 흔적들의 기록이다. 행위와 육체가 자취를 감추고 난 후 그곳에 남겨진 잔해들을 통해 읽는 어제의 욕망과 오늘의 부재, 그리고 죽음이라는 내일의 전조를 기록한 글로 쓴 사진들.
우리는 그들이 무음으로 주고받은 대화를, 비밀스러운 몸짓들을, 어느 날 아침, 행위가 지나가고 폐허처럼 남겨진 것들을 담은 사진 속에서 알아차린다. 이곳에서 지난밤의 사랑과 욕망은 중요치 않다. 결국에는 사라지고 말 모든 것들을 최선을 다해 붙잡는 그들의 '시도'만이 의미를 갖게 될 뿐이다. 그리고 우리 역시 지극히 사적이고 은밀한 그들의 계획에 동참하고 만다.
육체가 빠져나간 이 에로틱한 공연의 관객으로서, 글로 쓰인 사진을 눈과 손으로 더듬으면서, 살과 뼈가 없이 이뤄지는 에로스를 받아들이면서. 단 한 번도 이겨본 적 없는 시간을, 우리는 그들과 함께 사진으로, 글로 뛰어넘기를 어느덧 소망하게 된다.
프랑스 현대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 1940년 프랑스 릴본에서 태어났다. 카페 겸 식료품점을 운영하며 자연스럽게 집안일을 분담하는 부모 사이에서 자랐다. 대학에서 현대 프랑스 문학을 전공하고, 중고등학교 교사를 거쳐, 통신대학 교수로 일했다. 1974년 자전적 요소가 담긴 『빈 옷장Les armoires vides』으로 데뷔한 이래, 자신의 삶을 끊임없이 작품으로 써냈다. 1981년, 여성으로서의 삶을 쓴 『얼어붙은 여자La femme gelee』를 발표하며 작품 세계의 전환을 맞았다. 1984년 『자리 La place』로 르노도 상을 받으며, 평단과 대중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어머니의 죽음을 애도하며 쓴 『한 여자 Une femme』에서 자신의 작품을 ‘문학과 사회학, 그리고 역사 사이에 존재하는 그 무엇’이라고 규정하는데, 이는 아니 에르노의 작품 세계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2008년 『세월 Les annees』로 다수의 문학상을 수상하며 이전 작품들이 재조명되었다. 2022년 노벨 문학상을 수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