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지 않는 눈은 7년 전 처음 내렸다. "다 망했으면 좋겠다. 진짜 다 망했으면." (15쪽) 생각하던 중학교 2학년 모루. 그렇다고 진짜로 세상이 망하는 걸 바라는 건 아니었는데, 6월의 함박눈이 내리며 세상은 정말로 망해버렸다. 피부에 닿자마자 발진을 일으키고 태워야만 폐기할 수 있는 '방부제 눈'이 내리는 백영. '센터'에서 눈을 치우는 일을 하는 모루는 스노볼을 남기고 실종된 이모의 흔적을 찾아 나서기로 한다. 그리고 그의 옆에 이월이 있다.
세상이 망해간다고 해서 방부제 눈이 '예쁘다'라고 느낀다면 잘못된 걸까. 얼굴을 가린 마스크가 일상이 된 시대에 읽는 묘한 활력을 지닌 종말기. 좀비가 된 후에도 밥 달라고 식탁에 앉는 아버지를 둘러싼 좀비 활극 <칵테일, 러브, 좀비> 등의 작품을 통해 비틀어진 일상이 이야기가 되는 순간을 그려온 조예은의 디스토피아 SF, 미스터리 스릴러, 휴먼 드라마. '녹색의 땅'을 향해 끝없이 이어지던 영화 <매드 맥스>의 질주처럼, 서로를 발견한 모루와 이월은 달린다. "나는 도저히, 가만히 기다리는 것은 이제 못 하겠어." (213쪽) 라고 말하는 두 사람의 활기. "여전히 눈길 위로 달리기를 선택하는" 이들을 응원하면서 <우.빛.속> 김초엽 작가가 추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