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년 전 어느 아이돌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있었던 일이다. 보컬트레이너 역할로 프로그램에 참여한 한 가수와 오디션 참가자가 경연 준비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던 도중, 참가자가 ‘건들건들’ 거리는 듯한 제스쳐를 취했다. 이 모습을 본 가수는 “예의 있게 이야기하라.”며 단호하게 주의를 주었고, 참가자의 사과가 이어진 후 이야기를 경청하며 차분하게 조언해 주었다. 이 모습은 프로그램 방영 당시 물론, 수년이 지난 이후에도 계속해서 많은 사람들에게 화제가 되었다. 감미로운 목소리로 유명한 가수의 단호한 태도(와 팔뚝의 문신)가 의외의 매력으로 다가왔다는 점을 부인할 수 없지만, 다른 한 편으로 ‘예의’에 대한 사람들의 어떤 ‘갈증’을 건드렸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무언가에 갈증을 느낀다면, 그것이 부족한 탓이다. 수년 전부터 우리 사회에서 회자되기 시작했던 예의, 무례, 배려, 불관용, 매너, 품격, 천박 같은 단어들은 우리가 무례함과 불관용의 시대를 살고 있음을 의미하는 듯하다.
소비, 여행, 온천, 지도, 인상, 추리소설, 관상 등 독특한 소재로 독자들을 역사적 사유의 세계로 이끌었던 설혜심 교수가 특정 사회에서 예의 바르다고 여겨지는 행동, 매너에 대한 글을 쓰겠다고 결심한 이유도 이 때문이다. 저자는 고대부터 20세기까지 생산된 100여 종의 예법서를 통해 서양 매너의 이론을 정립한 아리스토텔레스와 키케로부터 중세의 기사도, 에라스뮈스와 로크의 예절 교육, 18세기 영국식 매너와 젠틀맨다움을 거쳐 상류사회의 엄격하고 까다로운 에티켓으로의 퇴행과 계급을 벗어나 개인화된 20세기의 에티켓까지 매너의 역사를 일별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인류가 왜 매너를 발명해 냈고, 그토록 오랜 시간 유지해 온 이유가 무엇인지 추적한다. 지배 엘리트의 포섭과 배척을 위한 기제라는 매너의 본령이 역사적 흐름 속에서 흔들리고 개인화되어 가는 양상, 더 나은 관계를 만들고 더 좋은 사회적 분위기를 만들어 내고, 결론적으로 평화로움을 창조하는 매너의 역할 등 두꺼운 책 안에 저자의 통찰이 가득하다.